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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집/흔적만 남은 '그때 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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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집/흔적만 남은 '그때 그자리'

입력
2000.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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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영령’들의 한과 절규가 서린 1980년 5월 ‘그때 그자리’는 20년의 세월과 함께 점점 당시의 모습을 잃고 있어 아쉬움을 더해준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그 자리엔 지금 머리를 물들인 N세대들이 활보하고 있다.항쟁의 최초 발원지로 5월18일 계엄군과 학생들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북구 용봉동 전남대 정문앞은 96년 개축돼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5·18사적지 1호인 ‘정문앞’에 조성된 기념공원과 사적지 표지판만이 순례자들을 맞고 있을 뿐이다.

‘가자 도청앞으로’란 구호가 상징하듯 대표적 결사항전지였던 전남도청 정문옆에는 지하철1호선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5월27일 새벽 계엄군에 대항하던 시민군이 장렬한 최후를 마친 도청 마당에는 5·18민중항쟁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피의 수요일’인 5월21일 계엄군의 총탄에 50여명이 쓰러진 금남로는 광주YMCA와 가톨릭센터 등 당시 ‘주요 역할’을 맡았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도청앞 분수대에서 임동 방향으로 2㎞에 이르는 금남로에서는 해마다 5·18 전야제가 열려 그날을 되새기고 있다.

당시 전남·북 계엄분소가 설치됐던 서구 상무동 상무대는 부대이전과 함께 신도시가 조성돼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광주시 신청사가 들어서고 있다. 고문과 구타가 자행되고 군사재판이 열렸던 이곳에는 복원된 옛 법정에 재판장면 사진 한장과 군화 군복 진압봉 등이 전시돼 그나마 ‘몸서리치던 고문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세계적 민주성지로 알려진 ‘망월동 묘지’도 돌보는 사람이 드물어 잡초들이 무성한 채 방치돼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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