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시들해질 만하니 이번엔 ‘몸로비’ 사건이 터져 또 한번 시끌벅적 난리다. 재미있는 것은 향응을 받았다는 쪽은 오히려 시인하는 반면 그걸 제공했어야 하는 쪽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몸까지 바쳤는데 이게 뭐냐는 식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양쪽이 함께 극구 부인하는 것이 통례인 걸 생각하면 뭔가 석연치 않다.그런데 이런 사건에서 왜 남자가 성을 상납했다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한마디로 성에 관한 한 결정권이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게 있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에서 투자를 가장 많이 한 최대주주가 최종결정권을 쥐는 것처럼, 암수 사이에서도 암컷의 투자가 대부분의 경우 수컷의 투자보다 크기 때문에 성은 어차피 암컷의 특권이다.
수정을 하기 위해 난자를 파고드는 정자를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해보면 마치 달 표면에 내려앉는 우주선과도 같다. 이 세상에 정자만큼 경제적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또 없을 것이다. 수컷의 DNA에 꼬리만 하나 달아준 것이 바로 정자다. 거기에 꼬리를 움직일 수 있도록 이른바 에너지 제조공장인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라는 세포소기관들을 몇개 목 부위에 끼워 넣은 것이 고작이다. 그야말로 덜덜거리는 모터사이클 퀵서비스에 유전물질을 태워보내는 격이다.
그에 비하면 난자는 암컷의 DNA외에도 수정란의 초기발생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고루 갖추고 있다. 수정 외의 번식과정에 암컷보다 훨씬 큰 투자를 한다면 모를까 성에 관한 한 수컷은 기본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 투자는 쥐꼬리만큼 해놓고 호의를 베풀겠노라 생색을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아프리카에는 그곳 사람들을 벌통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여 벌꿀을 수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들이 있다. ‘꿀안내새’라 불리는 이 새의 수컷들은 제가끔 벌통을 하나씩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의 뒤를 밟아 꿀을 채취하는 것이다. 꿀안내새 수컷들은 인간에게 꿀을 제공하기 위해 벌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수컷이 벌통을 보호하는 진짜 이유는 암컷이 꿀을 먹으러 찾아오기 때문이다. 암컷은 수컷에게 자기 몸을 허락하고 그 대가로 꿀을 얻어먹는다.
우리가 흔히 아는 침팬지보다 몸이 더 호리호리한 편이고 훨씬 자주 두 발로 걷기를 좋아하는 보노보는 성에 대해 무척 개방적이다. 침팬지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번식기에만 성관계를 갖는 반면 보노보는 월경주기 내내 빈번하게 성관계를 갖는다. 보노보 암컷은 일생동안 줄잡아 5,500번의 성교를 하며, 그 중 약 3,000번을 첫 임신 전에 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그들의 성은 반드시 임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보노보들은 열매가 잔뜩 달린 무화과 나무를 발견하면 우선 성관계부터 갖는다. 심지어는 서로 잘 모르는 패거리들이 우연히 맞닥뜨렸을 때에도 서로 잠자리부터 같이 한다. 암컷들이 성을 이용하여 불필요한 싸움이나 지나친 경쟁을 줄이는 것이다. 어느 동물에서나 이권을 위해 몸을 허락할 수 있는 것은 암컷 뿐이다.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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