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한국계 신용조합인 상은(商銀)의 도산이 잇따르는 가운데 유력한 재편·구제 방안인 한국계 인수은행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이 두 갈래로 나뉘어 동포사회가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지난해말부터 ‘한일(韓日)은행’설립을 추진해 온 재일동포 상공인·지식인들은 13일 오후 도쿄(東京) 오테마치(大手町) 산케이홀에서 전국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설립위원회 수석 대표인 도쿄(東京)한국학교 손성조(孫性祖)이사장은 8월까지 100억엔의 출자금을 확보해 은행 예비면허를 신청, 내년 1월 납입자본금 1,000억엔 규모의 ‘한일은행’을 설립한다는 행동계획을 제시했다.
손 이사장은 “상은의 도산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서도 ‘재일한국인 신용조합협회’(한신협)의 통폐합이 지지부진, 동포 상공인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배경을 들었다. 또 은행 설립후 한국계 신용조합을 그대로 인수하고 한신협 임직원 등 전문가에게 경영 일체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한국계 은행을 인수은행으로 삼아 한신협 산하 신용조합을 통폐합, 일본 당국의 공적 자금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면 동포 상공인의 주거래 은행으로 정착되리라는 구상이다. 이미 조총련계 신용조합인 ‘조선은행’은 4개 신용조합으로의 재편을 본격화, 1조엔 이상의 공적 자금 취득이 무난하리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한편 이희건(李熙健) 한신협회장은 지난달 ‘한신협 통합후 은행 전환’이라는 별도의 은행 설립 구상을 발표했다. 지난 2년간 ‘권역별 통합’등 한신협 자체의 다양한 재편 구상이 당사자들의 경영권 집착으로 늘 ‘총론 찬성, 각론 반대’로 끝난 바 있다. 따라서 공적자금 지급시한인 2002년 3월말까지 무늬만 바뀐 통합 구상의 실현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그러나 한신협 전체 예금량 2조2,000억엔의 절반을 차지하는 간사이(關西)흥은을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의 영향력은 크다. 벌써부터 동포 상공인들의 눈치작전이 시작돼 연말까지 출자금 1,000억엔을 확보한다는 ‘한일은행’의 계획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두 갈래로 나뉜 은행 설립 움직임에는 간사이흥은과 도쿄(東京)상은의 주도권 다툼이 깔린 데다 출자전환될 한국 정부 예치금 400억엔의 행방도 달려 있어 양측의 사전 타협 가능성도 희박하다. ‘상은·흥은은 일본 금융기관’이란 이유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도 혼선의 한 요인이다. 문제는 일본 금융기관의 융자 기피 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계 신용조합의 도산에 따른 동포 상공인들의 심각한 자금난이다. 34개였던 한국계 신용조합 가운데 5개가 파산 처리절차에 들어가 있고 6개가 영업을 양도하는 등 지난 2년간 11개가 사실상 도산했다. 7월부터 일본 정부가 신용조합 금융검사에 들어가면 도산 사태는 더욱 번질 전망이어서 시간 여유도 없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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