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중고서적 유통이 아주 활발하다. 도쿄 중심부 간다(神田)에는 ‘헌책방’들이 즐비하다. 그 서점들을 대충 한번 훑어만 보려해도 한 나절 이상이 걸린다. 그 고서점들은 질에 있어서도 뛰어나고 전문화되어 있다. 어느 서점에서 어떤 분야를 주로 다루는지를 표시한 ‘간다 고서점 지도’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대학생으로부터 노학자들까지 고객층이 다양하다.■일본은 ‘문고판 천국’이라고 할만큼 문고판 서적 출판이 성행이다. 그 가운데는 처음엔 하드커버로 나왔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문고판으로 재출간되는 책들이 상당수 있다. 소설 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판형을 바꿔 값을 싸게 해서 다시 내놓는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책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서점인 ‘반스 앤 노블’에도 세일 코너가 있다. 싸게 파는 책이니 별 볼일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내 출판계에 고가(高價) 책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미술 관련 서적들은 천연색 도판 등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값이 3만-5만원이나 되는, 고급 양장본으로 된 인문과학 계통의 고가 서적들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IMF체제 이후 경제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그러지않아도 학계에서는 ‘인문학의 위기’가 심각하게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고가 정책의 변(辯)은 이렇다. “고급 인문서의 독자는 어차피 제한되어 있어 이들이 원하는 고급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불황시장에서 인문서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출간된 한 번역서의 경우는 고급스럽게 치장을 하고 높은 값을 매겼더니 손익분기점을 넘길만큼 잘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불황을 타개하려는 새로운 마케팅이겠지만, 특히 중고서적 유통시장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않은 우리 상황에서는, 좋은 책들이 지갑이 얇은 젊은 독자들로 부터 더 멀어져 ‘인문학의 위기’가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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