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격변의 공직사회](2) 빗장풀린 관료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격변의 공직사회](2) 빗장풀린 관료제

입력
2000.05.17 00:00
0 0

“일한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더이상 견딜 수 없어 천직으로 여겼던 공직을 떠납니다.”(최근 민간기업으로 ‘탈출’한 중앙부처 K과장)“임명제보다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발돼 소신껏 일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개방형 임용 첫 사례인 지건길 국립중앙박물관장)

공무원들은 벤처로, 민간전문가는 공직으로의 이동을 시작하면서 민과 관 사이의 거대한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공직의 경험을 살려 민간기업에 진출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전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들이 공직으로 몰리고 있다.

공무원들이 민간기업의 첨단경영기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한시적 취업을 보장하는 ‘고용휴직제’까지 내년에 실시되면 ‘민·관 연계정부’(Joint-up Government)라는 서구식 관료제가 21세기를 열게 될 전망이다.

산자부의 경우 최근 공무원들이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듣기 위해 현대판 ‘브나로드운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지난달에는 1차로 5-7급 실무자 16명을 기업과 산하단체, 연구소 등에 1개월간 파견했다.

연세대 김판석(金判錫) 교수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민·관 인사교류는 서로 다른 영역간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기반사회를 건설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벽허물기’의 이면에는 공직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벤처기업이 관청 상대 영업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로 경제부처 고위관료를 선호하는 현상이 그것이다. 민간기업의 경영마인드가 이런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 민·관 교류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잘 나가는’ 공무원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자들의 심리적 공황도 관료제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정부과천청사에 근무하는 J국장은 “20년 이상 공직에 몸 담았지만 막상 민간기업에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며 허탈해 했다.

‘열린 정부’라는 그럴싸한 모토로 시작된 개방형 임용제도 곳곳에서 암초에 걸려 있다. 해당 직급에 결원이 생겨야 임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언제 130자리가 다 채워질지 모를 일이다.

중앙인사위 박기준(朴基俊) 직무분석과장은 “개방형 자리를 언제까지 채우겠다고 목표연도를 제시한 적이 없다”면서 “다만 97, 98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공무원들의 이직률이 떨어져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 3월8일 산림청이 명예퇴직으로 자리가 빈 임업정책국장 자리를 개방형으로 공모하자 대학교수와 연구원 등 내로라하는 전문가 7명이 몰려들었다. 올들어 모집공고를 냈던 8개 부처, 13개 개방형 직위의 평균경쟁률 3대1에 비해 훨씬 치열한 경합이었다.

지금까지 공모된 자리가 대부분 한직이었던 것에 비해 이번 직위는 중앙부처 국장급이라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공무원 4명과 민간인 3명이 맞붙은 결과 산하기관인 임업연수원 연수부장 정광수(鄭光秀·46)씨가 낙점됐다. 내부 인사가 자리를 차지한 셈이다.

선발위원으로 참여한 산림청 관계자는 “민간인 지원자 가운데 관련분야 3년 이상 근무라는 자격요건을 충족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전공분야와 자질 등에서 공무원 지원자보다 뛰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산림청 P과장은 “개방형 국장 공모는 결국 과장들의 승진자리를 하나 없애는 것 아니냐”며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이 내부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구태여 외부에서 데려올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임용된 개방형 5자리에 지원했던 전문가는 공무원 9명과 민간인 9명 등 모두 18명으로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다. 당초 민간인들이 대거 지원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결과다.

중앙인사위는 관료조직에 적응하는 데 대한 부담과 연봉이 4,000만-5,000만원에 불과해 민간 지원자가 적다고 보고 개방형에 한해 연봉상한액을 두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같은 보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얼마나 민간전문가들이 수혈될지 의문이다. 관료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거세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유능한 공무원들이 더이상 매력이 없어진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하나둘 민간기업으로 떠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이같은 ‘탈관료선언’이 위험수위에 달하자 공무원 신분을 유지한 채 민간기업에 취업, 새로운 분위기와 첨단경영기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고용휴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용휴직제 또한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행자부의 한 공무원은 “장기간 민간기업 파견은 호봉승급과 보수 등 인사상 불이익이 예상되는데다 복귀 후 해당 기업의 ‘로비스트’라는 오해를 불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정용덕(鄭用德) 교수는 “오랜 계급제 사회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이 하루아침에 문화와 가치관을 바꾸기는 어렵다”면서 “현재 상황은 계층제적 위계질서가 지닌 순기능은 물론 인센티브 시스템의 효율성도 살리지 못한 채 관료제가 정체성을 잃고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허택회기자

thhe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