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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21] 전환기의 이념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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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21] 전환기의 이념과 사상

입력
2000.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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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을 위하여-민주주의를 넘어서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헌법의 제1조는 대한민국의 정체(政體)가 민주정(民主政)이고 국체(國體)가 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대한민국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이념적 버팀목이다. 공화정에 상대되는 개념은 왕정 또는 군주제다. 그러나 오늘날, 서남아시아의 일부 국가를 빼면 절대군주제는 지구 위에서 사라졌다. 헌법이 국체를 왕정으로 선언하고 있는 경우에도, 그 왕정은 대체로 입헌군주제다. 국왕은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

공화주의의 물살은 프랑스 혁명을 수원지(水源池)로 삼는다. 비록 스위스나 미국에서 공화정이 먼저 들어서기는 했지만, 공화제가 가장 전형적으로 뿌리내린 나라는 프랑스다. 반면에 민주주의의 씨앗은 앵글로색슨의 역사 곧 영국과 미국의 역사를 통해서 뿌려지고 결실했다. 공화주의는 흔히 세속적이고 쪼갤 수 없는 공화국의 존재, 공동선, 일반 이익 같은 가치와 관련된다. 민주주의는 흔히 관용, 다양성, 다수결 같은 가치와 관련된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때로 엇물린다. 공화정을 하나의 국체로서가 아니라 정신이나 원리로 규정할 때 더 그렇다. 실상 프랑스를 전형적인 공화국이라고 할 때, 그것은 국체로서의 공화정보다는 정신이나 원리로서의 공화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공화정을 국체로 선언하고 있는 나라들은 수두룩하지만, 공화정의 정신이나 원리가 관철되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엇물림은 레지스 드브레의 ‘시세를 거슬러’(1992)에서 관찰된 바 있다. 드브레는 이 책에서 정신이나 원리로서의 공화정을 옹호하며, 공화주의가 민주주의에 밀려나고 있는 현실을 쓸쓸히 관찰한다. 그는 혈통에 의한 세습군주의 부재라는 소극적 틀을 벗어나 공화정을 적극적으로 규정한다.

드브레에 따르면 모든 진정한 공화정은 민주주의적이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 공화국들을 포함한 비민주적 공화국들을 공화정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민주주의가 반드시 공화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드브레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공화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나라의 예로 독일이나 영국 그리고 특히 미국을 든다. 영국이야 입헌군주제를 취하니 공화주의와 무관하겠지만, 독일이나 미국이, 특히 프랑스보다 앞서 공화정을 수립한 미국이 왜 ‘비_공화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는가? 여기에 드브레의 독특한 관점이 있다.

드브레의 도식에 따르면 공화정이란 우선 “자유 더하기 이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성이다. 자유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뿐, 공화주의에는 미치지 못한다. 공화정에서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성의 동물로 정의된다. 공화국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니는 것은 신의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규율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로서다. 공화주의적 법의 정통성은 세속 도시의 합리적 자율이라는 원리에서 온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일부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의 경우와 다르다. 파리에서, 대통령은 저 낮은 곳의 사람들이 투표로 채택한 헌법에 선서한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대통령이 저 높은 곳에 근원을 둔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한다.

결국 드브레에 따르면 공화주의적 질서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세속적이다. 공화정은 둘째로 “관용 더하기 정치적·사회적 단일성의 원리”다. 관용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뿐, 공화주의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치적·사회적 단일성의 원리는 말을 바꾸면 공통선 또는 ‘공적인 일’(이것이 공화국을 말하는 Republic의 어원적 의미다)에 대한 마음씀이다. 특수주의와 사적 이익들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것 또는 일반 이익에 대한 마음씀이 공화주의의 특징이다. 반면에 민주주의는 공동체 내부의 차이들, 문화적·종교적 정체성들을 중시하고 국가는 단지 이것들의 평화적 공존을 보장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공화주의에서는 국가가 사회 위로 솟구쳐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사회가 국가를 지배한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개인적 자유들을 옹호한다. 비록 그것이 노골적인 이기심에 근거한 것일지라도 영업의 자유, 번영의 자유를 옹호한다. 그런데 공화정은 “법치국가 더하기 사회정의”다. 법치국가로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뿐, 공화주의에는 미치지 못한다. 여기서 사회 정의란 자선(慈善)의 손길에만 의존하지 않고 법에 의해 보장되는 일정한 정도의 평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화주의에서는 정치가 경제보다 우위에 서고, 민주주의에서는 경제가 정치를 지배한다.

오늘날의 시대 정신이 민주주의인 것은 확실하다. 공화정의 고향이라고 할 프랑스에서도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에 자리를 물려주고 있다. 자유와 관용과 법치만 선양될 뿐 이성·공공선(公共善)·사회정의 같은 말들은 의혹의 대상이 된다.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도 불리고 더 멋지게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이런 종말의 선언은 복음인가? 드브레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가 정치를 대체해버린 이 새로운 보편적 민주주의 질서보다 더 맹목적이고 위험한 유토피아는 없다. 왜냐하면 냉전의 종식은 우리를 ‘역사 이후’ 시대의 평화로운 해안가로 인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은 그 반대다. 소비에트 체제라는 길고 불길한 괄호가 닫히면서 우리는 동유럽에서 ‘비-역사’의 한 사이클이 끝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을 뿐이라고 드브레는 말한다.

역사는 그 곳으로 돌아와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인종주의와 종교적 열정이 전쟁의 형태로 폭발하면서 우리는 얄타 이전 시기로, 더 나아가 1914년 이전 시기로 돌아가고 있다. 알랭 맹크가 ‘새로운 중세’라고 부르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풍경은 ‘자유민주주의’의 서유럽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 ‘자유민주주의’는 서유럽을 점점 더 원칙의 공동체라기보다는 탐욕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고, 그래서 공화주의가 비워놓은 자리를 낡은 종족주의나 종교적 열정이 차지할 위험이 크다.

드브레가 보기에 프랑스 혁명은 패배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방데앵(반혁명파)이 자코뱅(혁명파)을 내쫓으며, 단일하고 불가분하고 세속적인 공화국이 포스트모던한 얼굴을 지닌 봉건체제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드브레의 공화정 예찬은 지금의 세계질서를 바라보는 한 좌파의 시각이다. 그가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좀더 일반적인 용어법으로는 (신)자유주의로, 그가 공화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로 번역될 수 있겠다.

● 유럽의 군주들

유럽연합 회원국 열다섯 나라 가운데 반수에 가까운 일곱 나라가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 나라들에서 군림하는 입헌 군주들의 면면을 보면 지난해에 한국을 방문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영국의 엘리자베드 2세 외에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 네덜란드의 베아트리스 여왕, 벨기에 국왕 알베르 2세, 룩셈부르크의 요한 대공,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 2세, 스웨덴의 카를 구스타프 국왕 등이다. 거기에다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5세와 모나코의 레니에공, 리히텐슈타인의 한스 아담 2세 공을 더하면 넓은 의미의 서유럽에서 군주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가 열 손가락을 꽉 채우게 된다.

물론 동유럽의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그들의 국가 이념에 따라 당연히 공화제를 택했다. 그 나라들 가운데 일부는 제2차세계 대전 이후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이전까지의 왕정을 폐지한 나라들이다. 1989년 이후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 그 나라들의 옛 군주나 그 군주의 적자들이 복위를 시도하기도 했었다. 그 시도들은 다 실패로 끝났다. 예컨대 1939년까지 알바니아를 통치했던 조그 1세의 아들 레카 공은 알바니아에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뒤 조국의 왕으로 귀국하고 싶었지만, 국민투표 결과 알바니아인의 80%가 왕정 복고에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종전 이후 반 세기의 세월 동안 자신의 옛 신민(臣民)들이 공화주의자로 탈바꿈해버린 것이다. 1946년에 아홉 세의 나이로 폐위된 불가리아 국왕 시메온 2세도 복위하고 싶었으나 국내 정치세력의 반대로 실패했다. 그러나 불가리아 정치인들은 되태어난 불가리아의 국기에 옛 왕가의 문장(紋章)을 삽입함으로써 옛 군주의 복위를 바라는 일부 국민의 복고정서와 타협했다.

유럽의 이들 입헌 군주들은 중세 이래의 전통대로 대부분 그들 사이에 친인척 관계를 맺고 있다. 예컨대 현재의 영국 여왕 엘리자베드 2세는 물론이고,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스웨덴의 카를 구스타프, 노르웨이의 하랄드 5세, 1967년 군사 쿠데타 이후로 왕위에서 쫓겨난 그리스의 콘스탄틴 2세, 1947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폐위된 루마니아의 미카엘 1세 등이 모두 1901년에 승하한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핏줄로 이어져 있다. 방계까지를 합치면 입헌 군주제 국가든 공화제 국가든 지금 유럽에 살고 있는 왕족들 거의 모두가 서로 친인척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모든 나라에 왕정이 복고되면 단번에 ‘유럽 통합’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편집위원 고종석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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