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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문화예술

입력
2000.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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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로 승화된 20년 "광주여 영원히"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20년. 광주는 그 실체의 규명과 화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우리 현대사의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 숙제를 풀려는 노력은 오히려 문화예술 분야에서 가장 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는 1980년 이래 한국 문화예술의 가장 무거운 화두였다.

광주와 관련된 민중, 저항의 개념은 문화 각 분야의 전파를 통해 이제 한국문화의 보편적 기준이 됐다. 모두가 안으로만 광주의 아픔과 분노를 삭여야 했던 1980년대 초반 ‘오월의 노래’와 ‘임을 위한 행진곡’ 등 구전의 민중가요는 그 막힌 숨통을 뚫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시인들은 ‘도무지 서정시를 쓸 수 없던 시대’라고 절규하며 광주를 고발했고, 소설가들은 현실정치와 학문적 노력에 앞서서 광주의 실체를 알리고 규명하려 했다.

1989년 6월시민항쟁을 거치면서 광주 문제는 검열의 망을 걷고 우리 문화 전 분야의 최전면으로 나섰다. 방송에서는 ‘모래시계’로, 영화에서는 ‘꽃잎’으로 광주는 대중문화의 급속한 전파력을 타고 한층 폭발했다. 이후 90년대 중반부터는 사실의 복원과 함께 예술적 성취도가 중요시되는 단계에 이른다. 지난 20년간 문화 각 분야의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작업들을 점검해본다.

● 문학

소설가 문순태씨는 최근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그들의 새벽’을 발표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5월 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독자들이 더 이상 5월 소설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소설이 분단 민족 역사 공동체 등의 서사보다는 일상의 삶, 개인의 미시적 체험, 불륜 등의 드러내기에 함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광주가 결코 문학적으로 제대로 승화하지 못했다는 강한 역설이다.

임철우씨가 단편 ‘봄날‘(1984), 황석영씨가 실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 윤정모씨가 단편 ‘밤길’(1985) 등을 발표하면서 광주는 8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우리 문학의 전면에 나타났다. 1989년 6월항쟁을 전후해 발표된 ‘일어서는 땅’(문순태),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최윤), ‘완전한 영혼’(정찬), ‘눈’(하창수) 등의 문제작에서는 한결같이 광주로 상처받아 영혼과 신체가 왜곡된 비정상적 인간들이 등장한다. 이런 인물 위주의 접근법에서 홍희담씨의 ‘깃발’(1988)과 공선옥씨의 일련의 작품들은 광주의 실체와 주체의 문제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보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임철우씨가 원고지 7,000매 분량으로 쓴 장편소설 ‘봄날’은 일지 식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전모를 되살리려 한 야심작이다.

진실 규명과 그 상처의 내면화, 경직된 사실 묘사와 소설적 형상화 사이에서 여전히 광주는 문학적 과제로 남아있다. 송기숙씨의 ‘5월의 미소’ 황석영씨의 ‘오래된 정원’ 등 근작은 이 두 측면을 함께 모색한 작품이다.

● 음악·무용

“광주여 영원히! 너의 이름은 모든 민중의 심장에 새겨져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은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의 작품해설에 이렇게 썼다.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그는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채 광주의 피와 눈물을 음악으로 고발할 것을 결심한다. 마침 서부독일방송(WDR) 교향악단이 그에게 관현악곡을 위촉함에 따라 이 곡이 태어났다.

연주시간 20분의 이 작품은 궐기와 학살-진혼-재행진의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항쟁과 학살에 대한 음악적 기록 보고’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고통스럽고 격렬하며 어둡다. WDR교향악단이 81년 5월 8일 초연했다. 84년 캐나다 국제현대음악제의 독일 대표작으로 선정돼 10월 1일 개막공연에서 샤를 뒤투아가 지휘하는 몬트리올심포니가 연주했다. 국내에서는 94년 윤이상음악제에서 임원식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연주한 게 유일하다.

오페라로는 김선철의 ‘무등 둥둥’이 광주빛소리오페라단에 의해 지난해 5월 광주에서 초연됐다. 무용가 김화숙(원광대 교수)은 광주민주화운동을 3부작 현대무용으로 안무했다. ‘그해 오월’(1995년) ‘편애의 땅’(1997년) ‘그들의 결혼’(1998년)으로 이뤄진 이 시리즈에서 그는 광주민주화운동과 지역차별, 그 모든 것을 넘어선 화해를 춤으로 풀아냈다.

● 미술

‘광주’는 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미술’ 태동의 계기이자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민중미술과 한 몸이었다 해도 상관없을 만큼 광주는 미술가들에게 있어 뚜렷한 전환의 꼭지점이었다.

민중과의 소통, 현실 참여. 민중미술의 이 두가지 테제는 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극복과도 맥이 닿았다. 80년대 초반 성완경 오윤 등이 참가한 ‘현실과 발언’, 홍성담 최익균 등이 모인 ‘광주 자유미술인 협의회’등이 민중미술의 진폭제가 된 이후 ‘임술년’ ‘두렁’ ‘시대정신’ 등의 단체들이 등장했다. 젊은 미술인들은 때로는 풍자적이고, 때로는 직설적으로 광주로 대표되는 억압받는 민중의 삶을 그려갔다.

이 가운데 두드러진 작업은 목판화와 걸개그림이었다. 오윤, 홍성담, 김경주 등이 마디 굵은 선이 배인 강렬한 판화작품을 남겼다. 이외 1990년 5월 ‘광주여 오월이여’ 전시에 출품된 이성강의 ‘학살, 붉은 꽃잎은 지고’, 신학철 ‘나는 죽었는가’등이 미술적 성과로 꼽힌다.

● 연극

18~27일 공연될 극단 연우무대의 ‘5월의 신부’는 광주의 처절한 날들에 대한 사상 최대의 연극적 대응이다(황지우 작, 김광림 연출). 예술의전당 뒤 우면산 중턱 탁트인 야외극장에 총제작비 4억원이 무대 제작 등에 투입됐다. 3월 국립극장 대극장에서는 임철우 작 ‘봄날’이 상연돼, 이 극장의 보수적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두 작품은 ‘일어서는 사람들’ ‘금희의 오월’ 등 그 동안 민족극 계열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수공업적 작업들을 규모 면에서 능가, 광주의 무대예술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민족극 진영은 최근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박인배씨, 김명곤씨 등 지난 시절 줄기차게 연극적 공격을 퍼부어 온 사람들이 각각 국립극장장, 과천세계마당극제 예술감독 등 장내로 편입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노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임을 위한 행진곡’(작사 백기완, 작곡 김종률)은 광주의 문화운동가들이 81년 고 윤상원(시민군 대변인)의 넋풀이를 위한 카세트테이프를 제작하면서 대표곡으로 삼은 노래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히 ‘광주 정서’를 확산시켰다. ‘광주 출정가’ ‘오월가’ ‘선봉에 서서’ ‘전진하는 오월’ 등 단조풍의 행진곡은 모두 광주에서의 비장했던 투사들을 노래하고 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쏟네” 서울서 만들어진 ‘오월의 노래’가 암울한 정서를 바탕으로 방관자로서의 자책감과 애도의 뜻을 담고 있다면,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광주에서 만들어진 노래는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적극성을 드러낸다. 노래모임인 ‘노찾사’의 ‘오월 이야기 1,2,3’ ‘전진하는 오월’등도 꾸준히 불려지고 있는 광주의 노래.

금기였던 광주를 민중음악 진영에서 흡수하면서 기존 가요계에서는 이런 종류의 시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고립무원의 절망적인 ‘섬’이었던 광주를 노래한 김원중의 ‘바위섬’이 발표됐을 당시 포크발라드로 오인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하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정태춘이 ‘5·18’이라는 제목으로 광주를 노래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영화

80년대 후반부터 독립영화운동단체들의 화두는 노동해방과 광주였다. ‘그날이 오면’ ‘노란 깃발’ 등 단편들이 대학가나 소극장에서 상영됐지만 탄압받기 일쑤였다. 16㎜ 첫 장편영화인 ‘오 꿈의 나라’(장산곶매)는 89년 1월 서울 신촌예술극장에서 상영됐지만 곧 영화 제작자들이 구속되는 사태를 낳았다. ‘부활의 노래’(이정국 감독) ‘칸트씨의 발표회’(김태영 감독) 등도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들.

‘꽃잎’(장선우 감독)은 광주를 전면에 내세운 상업영화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현재 테크노 가수로 변신한 이정현은 발작을 일으키며 열차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는 신들린 연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광주 비극의 큰 틀을 간과한 채 광주를 신파 드라마의 현장으로 만들었다”는 혹독한 비판도 많아 역시 광주는 영화소재로서 ‘난제’임을 증명했다.

올해 연초 개봉한 ‘박하 사탕’(이창동 감독)의 한 장면. 학살 현장에 투입된 주인공이 한 소녀를 오발로 사살하는 처절한 광경을 통해 광주의 진압군이나 희생자 모두 권력의 희생물이었음을 말했다.

● 방송

“왜 찔렀지 왜 쏘았지 트럭에 실려 어딜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5월의 노래’가 관현악으로 깔리면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아들 전영진군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김순희씨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89년 5월 MBC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 방송에서 금기로 남아있던 광주가 성역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당시 연출자 김윤영 부국장은 “압력도 많았지만 노조와 동료 PD들이 힘을 합했지요. 물론 사회적 분위기도 민주화로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후 광주 관련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에서 드라마까지 때로는 교훈적으로, 때로는 상업적으로 봇물을 이뤘다.

광주를 형상화한 드라마 중 최대 화제작은 역시 96년 SBS가 방송한 드라마 ‘모래시계’. 진압군 박상원과 시민군 최민수. 당시 광주시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촬영됐지만 정작 광주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SBS가 광주에서 방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노래’가 방송된 지 11년 만인 올해 ‘특집-충정작전, 그후 20년’(19일 9시 55분)에서는 광주 진압작전이었던 ‘충정작전’에 동원된 공수부대원들의 삶이 방송된다. KBS는 ‘광주항쟁 그후 20년’(18일 오후 10시)에서 20년간의 광주 시민들의 삶의 궤적을 그린다.

문화부

■5·18 20주년 기념 문화행사

그간 광주를 중심으로 조촐하게 치러지던 5·18기념 문화행사가 올해는 전국적으로 다채롭게 열린다. 민예총이 주관하는 5·18 기념 민중문화예술제 ‘2000 님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를 비롯해 서울, 부산, 대구 등 10여개 도시 순회공연으로 기획됐다. 특히 17일에는 5·18 예술제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광화문 앞 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다. 김원중 박문옥 노래마을 등의 노래공연과 놀이패 공연, 사진전 등이 펼쳐지는 순회공연은 3일 울산을 시작으로 대구, 대전 등 11개 도시를 돌았다.

5·18 행사는 역시 광주에서 빛난다. 18일 국제음악제 ‘휴먼 보이스’가 광주 망월동 신묘역에서 열린다. 86명으로 구성된 일본의 ‘우타고에 합창단’, 중남미의 노래운동모임 ‘누에바 칸시온’, 국내의 안치환과 자유, 이정열 등이 출연 예정.

서울시교향악단이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를 들려주는 음악회가 19일 오후 7시 30분 광주 망월동 특설무대, 2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5·18 영화제인 ‘꽃잎부터 박하사탕까지’는 광주, 부산, 서울 등 3개 도시에서 18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된다. ‘부활의 노래’ ‘어머니의 노래’ ‘황무지’ ‘꽃잎’ ‘박하사탕’ 등이 상영된다. 5·18미술전 ‘생명·나눔·공존’은 11-17일 광주 궁동미술관 등에서 열린다. 문의 민예총 기획단 (02)738-2606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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