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5월16일자 한국일보 사회면 보도로 한국전 당시 국군에 의한 양민대량학살 사실이 알려진 경남 산청군 학살현장에서 200여구의 유골이 발굴됐다.‘지리산 외공 양민학살사건 진상규명 추진위원회(위원장 도법스님·실상사 주지)는 “14일부터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 뒷산 소정골짜기에서 한국전 당
시 국군에 의해 집단총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200여구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15일 밝혔다.
추진위 관계자는 “이들 유골은 집단매장한 것으로 보이는 지름 4∼5㎙의 대형 봉분에서 한꺼번에 발굴됐다”며 “소정골짜기 반경 50㎙ 이내에 5개의 대형 봉분이 남아 있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골이 최소 500여구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발굴된 유골중에는 10세 정도로 추정되는 어린이의 유골도 1∼2구 있으며, 숟가락과 식기, 단추 등의 유품이 발견돼 희생자들이 민간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진주·산청지역 인사 30여명으로 구성된 추진위는 한국일보 보도내용을 근거로 진상조사에 나서 98년 외공마을 뒷산 소정골짜기에서 학살현장을 발견, 유골확인작업을 벌여왔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군은 51년 2월5일과 7일 어린이와 부녀자를 포함한 양민 800명을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유림면에 모은 뒤 ‘빨갱이’로 몰아 기관총으로 집단 학살했다.
당시 11세로 이 사건을 목격한 마을 주민 강영노(姜榮魯·60)씨는 “51년 2월 어느날 오전10께 국군 지프의 선도로 사람들을 가득 실은 버스 12대가 마을로 들어온 뒤 오후1시께 총성이 잇따라 마을이 진동할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추진위는 16일까지 발굴작업을 계속해 경상대 의대교수팀에 유골분석을 의뢰, 나이와 성별 등을 분석한 뒤 인근에 다시 안장하고 진상규명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추진위원 서봉석(徐奉錫·38·산청군의원)씨는“희생자들은 다른 지역에서 끌려온 보도연맹 관계자와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며 “24일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공식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동렬기자
dylee@hk.co.kr
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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