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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선거비용 신고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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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선거비용 신고 코미디

입력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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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본질은 ‘어처구니없음’이다. 솜씨있는 희극 작가는 관객을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상황설정에 능하다. 그런 점에서 13일까지 4·13 총선 선거비용을 자진 신고한 후보자들은 탁월한 유머리스트의 자격을 갖췄다.후보 1,037명의 평균신고액은 6,361만원으로 전국 평균 법정제한액 1억2,600만원의 51%다. 이중 당선자 9명을 포함해 모두 446명의 후보가 법정한도액의 50% 미만을 신고했다. 그 처절한 전투를 치르며 법이 허용한 ‘실탄’의 절반도 쓰지 않았다? 일상에서 수천만원의 크기를 우습게 여길만큼 간큰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30당(當)20락(落)’등의 용어에 익숙한 우리 국민정서로는 6,361만원의 신고액은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는 수치다.

그러나 이 정도 어처구니없음으로 웃음보를 터뜨릴만큼 우리 국민들의 유머감각이 단순치는 않다. 진짜 웃기는 것은 수입과 지출 액수를 단 한푼도 차이나지 않게 똑같이 신고한 후보가 80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경제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수입과 지출을 일치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근사치도 아니요, 수천만원대 신고액에서 단 1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얘긴데 만일 이것이 애오라지 사실일진댄 실로 경탄할 ‘경제 센스’라 할 것이다. 마치 오해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2명의 후보자는 수입과 지출의 차이를 1원으로 신고했다.

코미디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웃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재탕, 삼탕이 되면 싫증을 내는 것이 관객의 본색이다. 관객의 야유에도 아랑곳없이 열연하는 희극배우의 모습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노원명정치부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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