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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논리에 테러당하는 문화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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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논리에 테러당하는 문화재들

입력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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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하게 훼손되는 문화재는 백제 풍납토성만이 아니다. 개발논리를 앞세운 각종 공사와 정부의 무관심, 무능으로 인해 ‘우리 세대가 잠시 맡아 관리한 후 후손에게 넘겨줘야 할’ 문화재들이 전국 도처에서 무참하게 파괴돼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지난달 20일 경기 김포시 통진면 가현2리 하수도 매설공사장에서 백제시대 토기 파편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가로×세로 1m밖에 안되는 지하 1.5m지점에서만 격자문(格子文)이 새겨진 백제토기 수십점과 목재말뚝, 석제도구, 각종 씨앗류 등이 발견된 것.

이 지역은 신석기시대의 탄화미와 석기 및 통일신라시대의 성터가 확인된 적은 있지만 삼국시대 유물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가현2리 하수도 공사는 해당 관청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대로 진행돼 백제시대 유적은 흔적도 없이 묻히고 말았다.

지난해 2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한 충남 부여-서천 우회도로 건설공사는 삼한시대의 논티산성 유적 70%를 파괴했다. 부여군 논티산은 이미 학계에 익히 알려진 문화유적지였지만 국토관리청은 사전 지표조사도 없이 공사를 강행했다. 이 공사로 산성터에 산재했던 각종 유적, 토기 등 4세기 문화재들이 깡그리 파괴됐다.

이에 앞서 1998년에는 경남 함안군 칠원산성터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다는 허점을 노린 인근 채석장업주가 산성의 석재를 도굴하려다 붙잡혔다. 그러나 도청은 이후에도 문화재 지정을 미뤄 아직까지도 도굴꾼들 앞에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이밖에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경주 구황동 292의1 황룡사터(사적 6호) 전시관 건설 계획은 이 터가 통일신라시대 귀중한 유적의 출토지역이라는 점에서 문화계와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문화재청 등 관련당국은 지난해 5월 문화재관리법을 개정, ‘문화재 지표조사 의무화’조항을 신설했지만 지표조사를 3만㎡ 이상 건설현장에 한정해 실질적인 효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학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건설업자들은 또 현장에서 유물이 나온다고 해도 보존여부를 결정하는 문화재위원회의 복잡한 심의절차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사업의 차질을 우려, ‘조용히’ 덮어버리기가 일쑤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강정태 과장은 “연간 1,500여억원의 문화재 보존 예산은 국가 지정 문화재의 보수작업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라며 “전 국토가 유적지나 다름없어 훼손 문화재의 실태조사는 엄두도 못낸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서울대 이선복(고고미술학과) 교수는 “수십차례에 걸친 학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문화재 보호 의지가 없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적, 유물들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면서 “개발 정책과 문화재 정책간의 사전협조와 조율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풍납토성 보존' 국민연대 출범

풍납토성 훼손 사건과 관련, 문화재 보존과 주민의 재산권행사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들이 해법찾기에 나섰다.

열린문화운동시민연합(대표 홍일식·洪一植 전 고려대 총장)과 녹색연합 등 15개 시민사회단체는 1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열린문화운동시민연합 사무실에서 ‘풍납토성 보존 국민연대’준비모임을 갖고, 책임자 처벌과 주민 보상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문화재청과 서울시 등 관계 당국은 전체 풍납토성의 보존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주민 보상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장기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하라”며 “관계 당국에 대한 절박한 의사표시임을 이해하지만 조합의 반문화적 태도도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열린문화운동시민연합 김익수(金翼秀·31) 정책국장은 “아파트 재개발조합이 발굴비용을 물도록 하는 ‘원인자부담원칙’은 땅에 묻어 두는 것이 보존이라는 소극적 생각의 산물”이라며 “정부가 책임을 지면서 순차적으로 토지를 매입하는 적극적 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주 중 출범할 풍납토성 보존 국민연대는 유적지 토지 구입을 위한 내셔널트러스트 형태의 국민모금운동과 문화재 훼손 감시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풍납토성 속보] 풍납토성훼손자 3명 입건

속보=백제 풍납토성 유적훼손사건을 조사중인 서울 송파경찰서는 15일 굴삭기를 동원해 유적지 150여평을 훼손한 송파구 풍납1동 경당지구 대동아파트 재건설조합장 팽모(43)씨와 굴삭기사 유모(33)씨 등 모두 3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팽씨 등은 12일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와 송파구청 문화공보과가 공사재개 불가를 통보했고 13일 오전 11시 경기 오산시 한신대에서 재개발조합과 한신대, 문화재청이 모여 발굴계약 재조정 회의를 갖기로 했음에도 불구, 13일 오전 9시부터 공사를 재개해 초기 한성백제 시대 유적과 유구 7기를 훼손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팽씨는 경찰에서 “사업승인서에 발굴작업이 끝나면 착공을 해도 좋다고 명시돼 있는데 4-5년씩 기다려온 조합원 94명과 중도금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일반분양자 126명의 처지를 감안할 때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심의위원회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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