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에서 소리를 얻다지난 4월초 한국에 들어온 한대수(52)씨는 서울 청담동에 집을 구했다. 첫 음반 ‘멀고 먼 길’로 시작, 인연이 깊은 신세계레코드에서 음악작업을 하라고 구해준 것이다. 창업자 아들인 윤태원 사장이 오디오를 들고 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부했다. 이제 그는 아무 소리도 듣기 싫다. ‘적막’이 좋고,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듣는다. 그래서 오래 전 헤어진 아내를 추억하며 포크 ‘그대 어디있소’와 세상이 주는 공포를 ‘난 잠자기가 무서워/ 난 일어나기가 무서워/ 밖에 나가기도 무서워/ 집에 있는 것도 무서워/ 파라노이아(Paranoia)’라고 노래한 하드 록 ‘파라노이아’를 순식간에 작곡, 작사했다. “철이 없으니까. 철없는 할아버지지 뭐.” 여전히 천진한 그는 적막과 친해지며 시간을 보낸다.
‘걸작’ 26년 만에 완성되다
불쑥 들어와 휑하니 떠나곤 했던 한대수의 서울 체류 기간이 이번에는 좀 길어질 모양이다. ‘Masterpiece(걸작)’는 한대수의 음반 중 최고로 꼽히는 ‘멀고 먼 길’(1974), ‘무한대’(1989)를 CD로 복각한 것이다.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하루아침’ ‘나 혼자’ ‘마지막 꿈’ 등이 수록된 2CD 음반은 단순한 ‘복각’ 앨범 이상이다. ‘무한대’에 일렉트릭 버전으로 수록됐던 ‘하루 아침’은 1974년 녹음됐다가 이 곡으로 음반판매가 금지될 것이 두려워 수록하지 못했던 곡. 소주로 시작해 소주로 끝나는 백수의 하루인데, ‘근로의식 고취’라는 당대 캐치프레이즈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정서였다. 세상에 적응하지 않는 젊은이의 자조적인 일상이 기타와 목탁소리를 배경으로 한 한대수의 유유자적한 보컬에 잘 녹아있는 ‘히피’문화의 대표곡이다. 1996년 ‘백두산’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도균과 듀엣곡인 ‘No Religion’등 다섯곡은 또 다른 기쁨이다. 한대수의 생각과 사진 예술을 볼 수 있는 책자 형식으로 꾸민 음반은 그 자체가 ‘작품’이다.
최건에 주목하다
“지난해 9월 센추리파크 공연에서 최건을 처음 만났다. 체제 변화의 격동기에는 마치 사랑을 처음 나누는 순간처럼 강렬한 에너지가 발산된다. 중국에 사는 최건의 노래는 역시 리듬이 강하다. 중국이라는 큰 배경도 서구에서 그를 주목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다만 영어 노래가 없다는 게 단점이다. 둘이 합치면 어떤 파워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중국계 한국인 가수 최건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9월 23일-10월 6일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대전 등 5개 도시 순회공연을 계획했다. 서울에서 새 음반을 내자고도 얘기해 볼 작정이다.
청소년을 향해 손짓하다
8월 12일 그는 속초 록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9월 중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리는 ‘쌈지 콘서트’에서는 이상은과 합동공연이 예정돼 있다. “본격적으로 활동한다는 것도 억지말이다. 그냥 자연스럽개 하고 싶다.”
그러나 그는 올해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일을 계획중이다. “우리 음악은 완전히 화폐주의자가 됐다. 음악은 대중의 ‘취향’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다가가야 한다. 막강한 중국, 알부자 일본 사이에서 우리를 우리대로 지켜낼 것은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젊은이 얘기가 나오면 그의 말을 그칠 줄 모른다. “포크는 얼과 꿈이 담긴 간소한 노래다. 젊음의 분노와 투쟁은 록으로 해소한다.” 포크와 록에 대한 그의 정의. “나이가 들면 노래 만들기가 어렵다. 마음의 캔버스가 검어지기 때문이다. 물이 꽉 찬 스펀지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는 벌써 7월 녹음, 내년쯤 발매될 음반을 위해 10곡을 써놓았다. 그들, “한대수가 누구야”하는 이들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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