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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學歷과 學力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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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學歷과 學力 사이에서

입력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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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가장 악질적인 규정은 학력(學歷)제한이다. 이 학력은 개인의 사회 활동을 제한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심성과 삶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1979년 7월6일 아침, 나는 P일보사 기자시험 면접 고사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군은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는가” “그렇습니다” “이 학교는 몇년제 대학인가”“2년제 초급대학 과정입니다” “어떻게 2년제 초급대학을 졸업하고 기자시험에 응시할 생각을 했는가” “4년제 대학 졸업자및 동등 학력(學力) 소지자라는 응시규정 때문입니다” “자네는 4년제 대학 졸업자와 동등 학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필기시험에 합격했다고 동등 학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곤란해. 동등 학력이란 전인적인 인격과 지성을 갖추었다는 의미지” “4년제 대학을 졸업못했다고 해서 4년제 대학 졸업자보다 전인적인 인격과 지성이 모자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배석한 전무에게)이 자는 설사 합격시킨다고 해도 3급 기자는 곤란하지 않을까. 4급이면 몰라도…”“4급은 사무직이나 기술직이지 기자는 그런 급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천천히 일어서서 면접 고사장을 나오고 있었다. 학력(學歷)을 문제삼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인격과 지성이 급수로 매겨지는데 대해 심한 모욕감을 느꼈던 것이고 바로 그런 질문을 한 분이 내가 교육학 교재에서 이름 석자를 발견했던 유명한 교육학자였다는 데 기분이 더욱 참담해졌다.

며칠전 극작가 이강백(李康白)선생을 만나 재직하고있는 학교 소식을 물었더니 “나도 이형처럼 가방 끈이 짧아서 아직 보너스도 못받는 교수 대우야”라며 피식 웃는다. 웃음속에서 싸늘하게 깔리는 참담함이 발견된다. 당대를 대표하는 극작가도 학력(學歷)과 학력(學力)사이에서 제자리를 못찾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는 봉건사회에서 살고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윤택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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