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전에 ‘패배’란 없다!”160명이 넘는 한국기원 기사 중 올들어 유일하게 단 한 차례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은 ‘불패소년’이세돌(17) 3단. 그의 필승 무패행진이 쉼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3단은 15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1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예선 1회전에서 여류강호 윤영선 2단을 불계로 꺾고 대망의 31연승 고지에 올랐다.
이창호 41연승(1990년), 김인 40연승(1968년)에 이어 ‘바둑황제’ 조훈현 9단(31연승·1977년)과 함께 역대 연승기록 3위(표 참조). 올 1월 25일 제12기 기성전 예선 1회전에서 옥득진 초단을 제압한 지 약 4개월만이다. 연승행진을 계속하는 동안 그는 제12기 기성전,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제8기 배달왕기전, 제35기 패왕전 등 7개 기전 본선에도 연속 진출, 프로입단 이후 최고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사실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권갑용 6단의 내제자로 활동하던 여덟살 무렵부터 바둑계는 일찌감치 그의 천재적 기재에 주목했다. 그가 한국기원 연구생을 거쳐 1995년 12년 4개월의 어린 나이로 입단했을 때는 이창호를 능가할 ‘제2의 이창호’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언제나 ‘차세대 유망주’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긴했지만 성적이 따라주질 못했다. 재주는 있지만 성미가 급하고 끈기가 부족해 큰 싸움에서 실수가 잦았던 탓이다. 1997년 제2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세계 최연소(14세) 국제대회 본선 진출기록을 세운 것이 내세울만한 성적표의 전부.
때문에 올해 이세돌의 연승행진은 그의 ‘천재성’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조훈현류의 발빠른 전투력과 타개술을 자랑하는 그의 기풍은 올들어 한결 다듬어진 행마법과 정확한 형세판단력이 더해지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제44기 국수전 2차예선에서 이세돌에게 백불계패를 당해 탈락한 ‘야전사령관’서봉수 9단은 “어떤 신예기사보다도 싸움의 감각이 탁월하고 힘이 세다. 이창호식의 정교한 수읽기와 수비능력이 보완된다면 대성할 재목”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반면 이 3단은 서 9단 외에는 아직 ‘4인방‘과 제대로 싸워본 전력이 없다는 것이 흠으로 꼽힌다. 현재까지의 연승기록이라는 것이 주로 국내기전 예선전에서 5단 이하 저단진을 상대로 올린 성과이므로 일방적인 평가를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 3단은 16일 제44기 국수전 예선 2회전에서 ‘세계 최고의 공격수’유창혁 9단과 연승행진의 최대 고비가 될 일전을 벌일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세돌의 선전은 친형 이상훈(25) 3단에게도 자극을 준듯 하다. 1990년 입단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이상훈은 올들어 제10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조한승 3단, 백대현 4단, 최명훈 7단, 윤현석 5단 등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라 한종진 3단을 상대로 생애 첫 타이틀 사냥에 나서고 있다. 상훈·세돌 형제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전남 신안군의 외딴섬 비금도(飛禽島) 출신.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강한 날개짓으로 재기의 비상(飛上)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역대 최다 연승기록
순 위 기 사 연 승 기록연도
1위 이창호 4단 41 1990년
2위 김인 6단 40 1968년
3위 조훈현 7단 31 1977년
3위 이세돌 3단 31 2000년
5위 임선근 4단 25 1984년
5위 이창호 3단 25 1988년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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