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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공직사회] (1) 철밥통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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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공직사회] (1) 철밥통이 깨진다

입력
200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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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IMF를 거치면서 불어닥친 변화와 개혁의 회오리 바람은 연공서열과 무사안일로 점철됐던 관료제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개방형 임용제 도입으로 공직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시간만 지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매력이 사라진 대신 능력과 실적이라는 가혹한 잣대가 공무원들을 경쟁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

민간전문가들은 개방형으로, 공무원들은 벤처기업 등으로 탈출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내년부터는 공무원들의 민간기업 채용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고용휴직제’가 실시될 예정이어서 민관교류의 물살이 거세질 전망이다.

아무리 무능해도 자리만 지키면 실적과 능력에 관계없이 같은 보수를 받았던 급여체계도 전면개편되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외교통상부와 기상청 공무원들은 같은 국장급이라도 업무량과 난이도 등을 감안, ‘자리값’에 따라 봉급이 달라진다.

‘철밥통’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공직사회였지만 서열파괴와 특별승진이 늘어나면서 자리보전도 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변화의 물살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관료가 국가발전을 주도해 가던 개발독재시대의 패러다임이 붕괴되고, 정책결정에 시민단체와 이익집단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정부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판공비 공개요구와 네티즌들의 사이버행정감시에 이어 잘못된 정책집행을 이유로 시민단체들의 예산환수운동도 벌이고 있다. 공무원들을 바짝 긴장시키는 변화들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관료제가 대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랜 연공서열의 계급제적 전통과 획일적·수직적인 행정문화가 곳곳에서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 새로운 피를 수혈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개방형 임용제도 현재까지 5명이 채용됐을 뿐이고 이나마 내부 인사가 3자리를 차지, 조직적인 저항과 반발이 감지되고 있다.

여기에다 툭하면 불어닥치는 사정한파에 몸을 움츠려야 하고 부패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마당에 신분보장의 보호막마저 벗겨지자 급기야 공무원노조설립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최근에는 1년이 멀다하고 3차례나 정부조직개편이 단행돼 공직사회는 불안과 긴장이 끊이지 않는다. 관료제가 변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의 불만도 많다. 중앙부처 최모(39)과장은 “부실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64조원이나 쏟아붓고 국민기업이라는 이유로 기아의 부채 7조원을 탕감해주면서 우수한 인력의 탈출현상에는 속수무책”이라며 공무원들만 몰아세우는 정부를 비난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격변의 공직사회] 승진후보 23위가 선후배평가 '1등'

지난 3월19일 교육부에 한바탕 돌풍이 몰아쳤다. 서기관 승진인사 명단에 사무관 경력 5년8개월의 박모(45·기획예산담당관실)씨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7개의 서기관 자리를 놓고 26명이 승진후보자 명부에 올랐으나 비고시출신인 박씨는 23위였다. 그런 그가 승진됐다. 장관이 점찍은 발탁인사도 아니었다.

상사 뿐아니라 동료와 부하직원들도 승진대상자를 고르는 다면(多面)평가제를 실시한 결과 박씨가 사무관 경력 8~12년의 고참들을 제치고 1순위로 꼽힌 것이다. 지난 1년동안 밤을 지새며 열악한 지방교육재정 확충에 매달린 공로를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같은 다면평가제를 내년부터 전 부처에 확대 적용할 예정이어서 예산만 축내온 ‘철밥통’과 상사의 눈치만 살피는 ‘해바라기성’공무원들은 더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됐다. 능력과 실적이 없으면 자리보전도 못할 정도로 공직사회가 변혁의 급류를 타고 있다. 연공서열 관행의 파괴다.

지난해 6월에는 재정경제부 국장(부이사관)에 행시 23회 출신의 J과장(서기관)이 발탁되자 내로라하던 고참들의 한숨소리가 한동안 그치지않았다. 행시 2~3회 선배들이 그의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과천청사에 근무하는 행시출신 P과장(40)은 “몇년전까지만 해도 큰 실수없이 중간정도만 하면 본부 국장이나 지방청장을 하는데는 큰 걱정이 없었다”면서 “요즘은 동료들도 하나둘 벤처기업으로 떠나가 뭔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쫓기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의 측근이나 승진을 앞둔 고참을 발령하던 주요 보직 인사관행도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달 10일 인사계장을 공모했다. 직원들의 추천과 자천한 5명 가운데 올 초에 서기관으로 승진한 K(41)씨가 낙점됐다.

10명으로 구성된 인사계장 추천위원회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질의응답을 벌여 K씨에게 최고점수를 주었다. ‘인사청문회’가 열린 셈이다.

지자체들도 승진심사에 앞서 동료와 부하, 상사로 구성된 예비심사위원회가 승진대상자를 1차로 심사하고 있다.

행자부는 앞으로 승진예정인원의 10%까지 서열에 관계없이 발탁승진하고 특별승진도 4급이하에서 3급이하로 확대키로 해 서열파괴는 더욱 가속화한다.

그러나 아직 ‘철밥통’의 서열파괴 사례는 그리 많지않다. 특별승진 또한 조직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중앙부처 박모(41)과장은 “승진후보명부(승진자의 3배수)에 오른 대상자를 제치고 순위외의 인물을 발탁할 경우 오히려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이 뽑힐 수 있다”며 “특별승진으로 연공서열이 파괴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청주대 진재구 교수는 “서열파괴는 조직내외에서 두루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공직사회의 집단적 의사결정시스템을 저해하고, 개인주의 성향을 조장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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