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정례화에 비중" 국민기대치 낮추기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최근 남북정상회담의 기대치를 낮추는 언급을 자주 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여러차례 “과욕을 부리지 않겠다”고 말해오다 지난 주부터는 “만남 그 자체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12일 주한 외교사절단을 위한 청와대 가든파티에서 “1972년2월 닉슨 전미국대통령은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났다”면서 “그 만남은 어떤 합의보다 중요했으며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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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은 또 같은 날 ‘법의 날’ 수상자와의 청와대 오찬에서 “만나고 또 만나고 그리고 임기후 후임자가 또다른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그 이상의 어렵고 심각한 문제는 시간을 두고 협의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언급들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담겨 있다.
하나는 “정상회담만 열리면 모든 게 술술 풀릴 것”이라는 국민 일반의 막연한 기대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분단 50년동안 남북이 적대적인 대결을 해온 상황에서 남북정상이 만났다고 당장 우호협력 관계가 열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다른 포인트는 현 시점에서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할 테마는 남북 당국자대화의 정례화라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당장 극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해도 남북정상을 비롯 장관 정치인 실무자들의 회동이 정례화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난제들이라 할지라도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하게된 데는 동·서독 정상회담의 우여곡절, 독일통일 과정의 끈기가 좋은 참조가 됐다.
사실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총리와 동독의 빌리 슈토프총리간 첫 동서독 정상회담도 국민 기대와는 달리 합의를 내놓지 못했다. 브란트총리는 동독의 실질적 통치자였던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과 만나지도 못했다.
다만 2차 회담이 서독 카젤에서 열린다는 발표만 있었을 뿐이었고, 2차 회담 때도 합의는 없었다. 그러나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72년 기본조약 체결 때까지 70여차례의 실무접촉이 있었고, 90년 통독 때까지 9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독일은 동족간에 전쟁을 치르지 않았는데도 결실을 맺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면서 “폰 바이체커 전독일대통령, 중국 주룽지(朱鎔基)총리 등 많은 외국 지도자들도 여러 채널을 통해 인내의 미학을 조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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