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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카오스의 아이들](5) 中3이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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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카오스의 아이들](5) 中3이 쓴 편지

입력
2000.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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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일 서울 광진구 어느 중학교에서 어버이날을 앞두고 중3학생들이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놀랍게도‘귀하’와‘올림’을 바꿔 쓴 학생들이 있었다.‘아들 귀하’‘부모님 올림’으로 써놓은 것이다. 사전에 국어교사가 상세히 편지쓰는 법을 설명했지만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들은 이를 듣지 못했다. 자기집 주소를 모르는 아이도 40명 중 절반이 넘었다.교직생활 21년의 교사는 자괴감을 느꼈다.“최근 2,3년 사이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 중에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철자법이 틀리는 것은 예사입니다. 날로 과외를 하는 학생이 늘어나는데도 참 역설적이지요”

일본에서도 학력저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3월17일 도쿄(東京) 인근 가와고에(川越)시 죠난중학교에서 만난 가와카미 료이치(河上亮一·57)교사의 말이다.“집에서 공부 안하는 아이도 학원에선 공부할 거라고 부모들은 생각하지요. 학원에 투자하는 비용은 부모의 안심료(安心料)일 뿐입니다. 학생들의 80%가 학원에 다닙니다.”

“예전엔 1학년 때 30등인 학생이 3학년이 되면서 수위권으로 오르는 예도 있었지만 지금은 기대할 수가 없어요. 공부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너도나도‘공부’‘ 공부’하는 데 비하면 퍽 느슨한 편이지요. 학생들이 준비물이나 과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립니다. 수업 중 집중하지 않고 멍한 학생이 많은데 이 현상은 해마다 심해지고 있지요.”월간‘세카이(世界)’도 5월호에서 학력저하 특집을 싣고‘일본의 깊은 위기’라고 표현했다.

교육선진국 미국의 1318세대도 나을 것이 없다. 기자가 미국연수중 메릴랜드대학 교수에게 미국대학생들의 학구열을 칭찬했을 때 워싱턴포스트 1999년 9월23일자를 보여주었다. 이 신문 1면에‘대학에 가려면 기초학력부터 쌓으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공립고교 졸업생들 중에 철자법을 모른 사람이 많다고 소개하고, 어휘력 부족과 문법을 몰라서 과제물 작성을 못하는 까닭에 많은 대학들이 보충수업반을 운영한다고 했다.

몽고메리대학의 영어강사 잭 수루다는 99년 가을학기에 자신의 클래스 22명중 17명에게 영어 기초학력 테스트를 했는데 12학년(고교 3학년)의 수준인 학생이 없었다. 이 대학 신입생의 대부분이 7학년(중1)정도의 학력수준이고 일부는 5학년(초등5년) 수준이었다. 그래서 영어보충반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부터 가르친다. 이 대학에는 35개의 영어 보충반이 있고, 또 25개의 듣기 기초

보충반과 58개의 수학 보충반를 두고 있다. 이는 미국 공립학교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전국 각 대학에는 영어기초보충반만 해도 수천개가 있다.

메릴랜드주의 한 단과대학의 경우 1997년 고교졸업생 입학자의 27%(4,240명)가 수학보충, 15%가 영어보충, 17%가 읽기보충 수업이 필요했다. 버지니아주도 1997년 공립고교 졸업생의 25%가 보충수업반을 필요로 했다. 디스트릭트 오브 컬럼비아대학의 경우 5,300명 학생 중 10%에 달하는 학생이 특별보충반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그 경비도 막대하다. 메릴랜드주의 공립 단과대학들은 1995년 회계연도에 1,760만 달러(193억6,000만원), 버지나주에서는 4,000만달러(440억원)를 썼다. 물론 이 돈은 대부분 납세자들의 세금이다. 디스트릭트 오브 컬럼비아대학에서는 보충수업반 운영을 위해 학교 예산의 5%인 120만달러(13억2,000만원)를 썼다.

워싱턴포스트가 메릴랜드지역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절반 가까운 교사가 고교 졸업장이 기초학력 이수를 보여주는 보증서가 아니라고 답했다. 또 교사들 셋 중 하나는 졸업이 불가능한 아이도 졸업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메릴랜드주 장학사 낸시 글래스믹은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전엔 학력이 낮은 학생들은 대학에 가지 않았지요. 그래도 취직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교 졸업만으론 일자리 얻기가 힘들어졌고, 공장노동자 직업도 사이버시대인 21세기에는 사라지고 있지요. 그래서 하이테크, 서비스산업이 주축이 되는 21세기에는 대학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학력이 낮은 학생들은 준비가 돼있지 않기 때문에 보충 수업을 받아야지요."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교사들은 학력저하의 또다른 원인으로 열린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공부는 누구나 하기 싫기 때문에 강제로 시켜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풀어놓으니 결국 기초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Y대의 한 교수는 입시 위주의 교육과 과보호의 문제점을 말한다.“요즘 학생들은 영어 해독과 회화 실력은 늘었으나 가정과 사회에서 과보호돼서 정서적으로 어린 상태로 대학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일반 교양이 부족하지요. 인간관계를 통해 균형잡힌 지식을 쌓을 기회가 없었고, 사회생활의 체험을 통해 정신면에서 성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기초학력은 지덕체교육이 병행돼야 단단해집니다.”

카오스아이들은 점수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젠 무슨 일을 하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와카미 교사는 공부를 하는 목적이 자신은 물론 타인과 사회를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를 담당할 책임감을 가지고 공부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최성자편집위원 sjchoi@hk.co.kr

■日심각한 학력저하

2002년부터 시작되는 일본 문부성의 새 학습지도 요령은 초·중·고교의 학습내용을 지금보다 30% 줄이도록 제시하고 있다. 그 취지는 아이들이 공부에 쫓길 필요없이 여유를 갖고‘삶을 헤쳐갈’힘을 갖도록 하며,“스스로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개성과 창의성을 살려준다”는 것이다.

그 동안 일본 교육현장에서는 주로 아이들의 정서 불안정과 자제력의 결여에서 나온 이상 현상들이 문제가 돼 왔다. 수업진행이 불가능한‘학급파괴’가 초등학교까지 만연하고 있고, 떼거리를 지어 약자를 괴롭히는‘이지메’가 성행해서 피해학생들의 등교거부와 자살이 잇따르기도 했다. 멀쩡한 아이가 순식간에 돌변, 교사에게 칼을 휘두르는 이른바‘ 팍 가는 아이’가 사회문제로 된 지 오래다.

이런 문제는 지나친 학습 부담이 근본 요인이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해 왔다. 따라서 새 학습지도요령은 구미에서 실험해온‘느슨한 교육’으로 옮겨가겠다는 교육당국의 의지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문부성장관 자문기구인 대학심의회는 지난달 대학측이 입시과목을 늘리더라도 용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중간보고서를 냈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입시과목을 줄이다 보니 고등학교에서 입시에 빠진 과목을 배우지 않고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이 늘어났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기초상식이 없는 신입생들이 많아 강의가 어려워 졌다. 학습 부담의 경감이 결과적으로는 학습 시기를 미룬 것에 지나지 않았고, 대학이 왜 그런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런 불만에 한동안“학력(學力)이 과거만 못하다는 얘기는 몇 세대 전부터 있었다”는 반론도 일었다. 그러나 너무나 뚜렷한 증거에 이런 반론이 줄어드는 대신‘교육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또다른 논쟁이 번지고 있다.

도쿄(東京)대학은 공학부에 진학하는 2학년생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기초수학능력을 조사해 왔다. 같은 내용의 시험에 대한 평균점수는 81년 54.0에서 83년 52.8, 90년 43.9, 94년 42.3으로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에는 공개조차 꺼리고 있다.

도쿄대학의 문과계 신입생 가운데 25%가 초등학교 5학년 과정의 소수점 두 자리수 사칙연산을 못한다는 조사 결과는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현재 일본 전국 대학의 5분의 1이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입시전문학원도 대학 신입생을 가르치는 특별반을 두기 시작했다.

유명한 물리학자인 아리마 아키토(有馬朗人) 전 문부성 장관은 학력저하를

수치로 보여주는‘아리마 공식’을 만들어 화제를 불렀다. 그는 출산율 저하로 고3 졸업생이 줄어드는 가운데 대학 입학정원을 그대로 두면 92년의 신입생 평균점을 100으로 잡을 때 2009년에는 5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면서 대학의 정원 삭감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런 해결책이 도입될 전망은 아득하지만 빠르면 2004년도 입시부터 시험과목을 크게 늘리겠다는 도쿄대학의 방침은 다른 대학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상담실에 비친 아이들 반문

"공부는 왜?"

90년대 중반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초등학생을 비롯 대학생까지 미국 학생들의 기초 학습능력이 떨어진다고 심각히 우려하는 말을 들었다. 그땐 그저 남의 일이려니 여겼다. 그런데 그 현상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만나는 교사마다 갈수록 학업태도가 나빠지고 기초학력이 낮아진다고 개탄한다. 교수들은 제대로 쓴 학생들의 보고서를 찾기 힘들다고 탄식한다.

상담실에 내는 아이들의 상담신청서에도 틀린 철자법과 문장이 쉽게 눈에 띈다. 이제 이런 반문을 쉽게 듣는다.“공부 못해도 잘 살 수 있는데 왜 골치 아프게 공부해야 하나요?”“ 학교 그만 두고 컴퓨터게임만 하고 싶어요.”

청소년들은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락카페, 콜라텍, DDR, 컴퓨터게임, 통신동우회 등이 끊임없이 유혹한다. 이제 공부만으로 친구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 따돌림당하지 않으려면 남들 하는 일에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 그뿐 아니다. 한 가지 특기만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있고, 뭐든 하나만 잘해도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부모나 교사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청소년들의“딴 짓”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갖고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나름대로 지식을 쌓아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재미있고 쉬운 일에만 몰두하느라고 기초학력 습득처럼 꾸준히 그리고 때로는 힘들게 해야 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에 있다.

청소년들에게 공부만 강요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기초학력을 쌓으면서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공부에서도 놀이처럼 재미와 성취감을 경험하도록 교과과정이나 교수방법을 발전시켜야 한다. 상담전화 02-730-2000, 사이버상담 www.youconet.or.kr

김진숙 / 한국 청소년 상담원 상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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