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가는 말로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시인은 침묵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오세영) “시간의 갈피 갈피에서 빠져나온 퇴적물들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 글들은 이런저런 무골(無骨)의 글들이다”(장석남)두 시인이 각각 산문집 ‘꽃잎 우표’(해냄 발행)와 ‘물의 정거장’(이레 발행)을 냈다. 오세영(58·서울대국문과교수)씨는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단의 중진이고, 장석남(35)씨는 김수영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주목받는 젊은 시인이다. 두 시인이 쓴 산문들은 시로서는 미처 다 말하지 못했던, 혹은 시와는 다른 방법으로 말하고 싶은 그들의 서정을 잘 드러내준다.
오세영 시인은 그 드러내지 못했던 말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하나씩 보내지 못한 편지가 있다”고 비유해 표현한다. ‘그때 그 편지는 지금 어디 갔는가, 그 사이에 끼워둔 꽃잎은, 그 꽃잎에 밴 재스민 향기는… 우표는 인간이 만든 통신수단만은 아니다. 바람에 분분히 날리는 꽃잎 역시 하늘 가던 우표들이 아니던가’
책에 실린 오씨의 에세이 95편은 이처럼 시같은 산문의 맛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그는 꽃, 별, 물, 바다 등 자연의 이미지들을 통해 동양적 관조의 사유로 인간 내면의 풍경을 펼쳐보인다. 하지만 그는 단지 생명의 아름다움만을 노래하지는 않는다. 그 유한성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있는 것들의 존재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가 시에서 서정성과 모더니즘을 조화시키고 있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인식의 깊이와 서정의 미학을 함께 보여준다.
장석남씨의 ‘물의 정거장’은 그의 첫번째 산문집이다. 1부는 그리운 누군가에게 쓰는 시인의 연서이고 2부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성장의 아픔을 담았다. 3부에 실린 글들에서는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시인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고 마지막 4부에서는 일상에서 꿈꾸는 여행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내 속에서 명사산이 울면 나는 그 울음을 달래야 한다. 그 달래는 일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것은 길떠남이다. 길게 끝없이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 방을 한 칸 들이는 일. 여행(이 거창한 이름이 싫지만)은 그 명사산의 울음을 달래준다’사람과 사물,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마치 자신의 시 제목 ‘젖은 눈’인듯 차분하다. 동료인 나희덕 시인이 그를 일러 ‘응시의 힘을 타고 난 그는 만나는 대상들마다 거기에 연못을 판다’고 했지만 이번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그런 시인의 응시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다. 장씨는 산문집에 자신이 직접 돌멩이에 새겨 그린 그림들도 함께 묶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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