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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놓음'의 결단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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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놓음'의 결단을 기다리며

입력
2000.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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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대통령 노릇하기 참 힘드시지요? 저는 한때 대학 선생 노릇하다가 변산에 내려와 농사지으면서 폐교된 학교를 빌려 지역 농어민의 자제를 가르친지 여섯해째 맞는 중늙은이입니다. 마음 편히 쓰는 중이니 편히 읽어주십시오.며칠 전에 ‘농발계’ 2호를 읽었습니다. 이 회보는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 사람들 소식지’입니다. 그 소식지 첫 면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은 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습지 중의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새만금갯벌은 부안 김제 군산에 걸쳐 드넓게(1,050㎢) 펼쳐저 있다.

특히 새만금갯벌은 북쪽으로는 금강하구의 영향을 받고 있고, 국내 유일의 강다운 강인 동진강과 만경강이 있어 하구갯벌이 건강하게 발달되어 있다.’이 글에 따르면 새만금은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랍니다. 그만큼 풍부한 갯벌자원이라는 뜻이겠지요.

소식지를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얼마 전 2월 3일 농업기반공사 문동신 사장은 직접 청와대에 가서 새만금추진현황을 보고하면서 “새만금 간척사업을 지금 중단하면 방조제유실 등 더 큰 생태계 재앙이 초래되고 막대한 국고 낭비와 대통령 공약 불이행으로 인한 국민불신이 초래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현재 공사 진척상황을 보자면 방조제공사의 60%로 1조250억의 국민혈세가 지출되었습니다. 그 중에 7,000억원이 보상금으로 외지의 양식업자들 중심으로 지급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방조제 공사진척은 전체공정의 15%가 채 못되고 있습니다. 또한 예산의 증가를 보자면 1991년 애초의 계획은 8,200억원이었음에도 2000년 현재 3조 6,843억+α로 4.5배가 늘었습니다.

+α는 새만금담수호 오염방지시설에 따르는 예산으로 만경강 생태공원 조성사업 등으로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공사의 내용을 보자면 갯벌의 환경 생태 경제적 가치와 이를 생활의 터전으로 살고 있는 농어민들의 생활 경제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일을 하려는 대통령들로 국민들이 애를 먹어왔습니다. 한 때 ‘일을 제대로 하는 데는 민주주의가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줄줄이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대통령님도 그런 통치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니셨습니까.

저는 어렸을 적부터 대통령이 할 일 없어서 빈둥거리는 나라, 국민들이 대통령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 나라가 진짜로 잘 사는 나라라는 말을 아버지한테서 듣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도 해주십사’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많은 일은 제쳐놓고라고 남북관계 정상화라는 큰 일을 앞에 두신 분께 그런 부탁을 드리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요구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놓아버리는 것도 참 좋습니다. 노자가 이야기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을 버리는 것(放下着)’이나 다 ‘놓음’의중요함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마음을 놓는 게 앞서야겠지요. 마음이 놓여야 어떤 일에서 손을 뗄 수 있으니까요. 새만금 사업은 지역차별이 심했던 독재시대에 그 차별에 저항하는 한 상징으로 시작한 것이기도 해서 놓아버리기 쉽지 않으실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우리 세대가 책임질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봅니다. 미래세대가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다른 분들은 대통령이 되어도 이 사업을 놓을 수 없습니다. 호남 푸대접이라고 벌떼처럼 일어설 지 겁이 나서요. 놓아버릴 수 잇는 유일한 분은 김대중 대통령님입니다. 놓아버리자고 그리고 마음 놓으시라고 청을 드리는 사람도 이 지역 사람들이고요.

놓아버리시고 안심하시고 통일의 디딤돌을 놓는 데에 마음 쏟으시기 바랍니다. - 변산에서 윤구병올림

/윤구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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