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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18) 과거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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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18) 과거청산

입력
2000.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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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6월 인천 D공전에 재학중이던 최모(당시 20세·여)씨는 갑자기 집에서 정보기관 요원들에 의해 끌려갔다. 시국에 대한 불만을 편지로 주고 받았다는 혐의로 11시간동안 조사를 받았던 최씨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다.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그는 수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83년 간첩 혐의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함모(69)씨는 45일간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에게 당한 끝에 거짓진술서를 썼다. 16년간 옥살이 후 출소한 함씨는 이근안을 고소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쪽 눈을 실명하고 생계가 막막한 함씨를 위해 인권단체들이 제기한 생활보호대상 신청도 기각됐다.

고문후유증과 자격박탈, 생계 수단을 상실한 사람에서 목숨을 잃은 자의 유가족까지…수 많은 역사의 피해자들이 이 순간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원상을 회복하는 ‘과거의 청산’은 인권 국가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48년 제주 4·3항쟁의 희생자, 75년 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8명, 80년 5·18 광주민중항쟁 희생자와 81년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 등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에 눈을 감고 있는 한 어떤 인권법도 허구라고 인권단체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피해는 순식간이었지만 보상 받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에 따르면 73년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부터 97년까지 의문사만 44건. 이 단체의 김학철(金學喆·42)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등 인권관련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시행령 마련 과정을 보면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한다”며 “특히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26명의 조사관으로 진상규명을 한다는 것을 진상규명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청교육대의 피해자들도 수많은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한 건도 승소한 것이 없다.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朴來群·39) 사무국장은 “이름있는 투쟁가 보다는 수많은 무명의 피해자들의 시련이 더욱 혹독하다”면서 “5·18을 제외하면 과거청산과 관련, 그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대 이재승(李在承·법학)교수는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었던 만큼 국가차원의 청산 작업은 물론, 반인륜적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새 인권법을 통해 공소시효를 없애고 끝까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사람을 사람답게] 남아공과 프랑스의 과거청산

과거 청산은 철저해야 한다. 복수가 아니라 ‘화합’의 기본요건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용서’해야 하는 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진정한 화해란 있을 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은 집권후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인권 침해자들을 과감히 사면했다. 그러나 전제조건은 가해자 스스로 진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진실규명만이 과거를 편히 쉬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 남아공의 과거청산은 흑백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2차 대전후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들에 대해 가혹할 만큼 숙청을 단행했다. 드골 당시 대통령은 “반인륜적 범죄에 벌을 줘야만 국민은 단결한다”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다. 드골의 과거청산 방식이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프랑스는 지금도 나치 전범을 찾아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만델라는 “참혹했던 과거의 청산에 실패한 나라는 여러세대에 걸쳐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는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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