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조직사회를 이루고 있는 개미세계에도 ‘사이비(似而非) 개미’가 있다. 개미가 아니면서 개미의 화학암호를 해독해 개미인 척 하며 개미로부터 꿀을 빼앗아먹고 개미유충을 잡아먹으며 편안히 지내는 곤충들로, 이들의 위장술도 얼마나 교묘한지 곤충학자들도 구별해내기가 어렵다고 한다.딱정벌레 애벌레는 개미애벌레가 음식을 구걸하는 행위를 그대로 흉내내고 개미들을 속이는 페로몬을 분비, 개미들로부터 음식을 제공받는다. 자객벌레라고 불리는 침노린재의 어떤 종은 개미들이 지나는 길목에서 매혹적인 화학물질을 분비, 개미가 이것을 빨아먹는 사이 독침을 놓아 잡아먹는다.
어떤 나비의 유충은 개미를 현혹시키는 물질을 분비해 개미집 아기방으로 호송되어 가만히 앉아서 음식을 얻어먹고 이듬해 봄에는 개미의 애벌레로 배를 채우며 성장해 번데기가 되었다가 여름이 되면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닷컴기업의 전성시대는 지났는가. 그 동안 고주가시대를 선도하며 21세기 신산업의 주역으로 각광받던 인터넷기업들의 주가가 추락하면서 인터넷기업에 대한 환상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야후의 주가는 연초에 비해 반 토막이 되었고 손정의의 소프트뱅크 주가는 4분의1로, 히카리통신의 주가는 10분의1로 추락했다.
국내 인터넷기업의 주가도 연초에 비해 반 토막이 되거나 심한 경우 4분의1로 곤두박질쳤다. 인터넷 관련기업의 주가 폭락과 이에 따른 인터넷기업의 수익모델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정보통신(IT)산업이 향후 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인터넷기업의 거품이 빠지면서 옥석 가리기가 끝나면 예전과 같이 자고 나면 몇 배씩 뛰는 식의 벼락성장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21세기 경제의 견인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기업이나 정부 모두 한국인의 체질에 딱 맞는 인터넷을 전통산업에 접목시키는 이른바 디지털산업에 우리 경제의 미래를 걸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화의 길목에는 간단치 않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첨단 벤처기업 온상에 건전한 벤처기업은 물론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해를 끼치는 독버섯들이 함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터넷세계의 ‘사이비 개미’들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도 첨단 인터넷기업으로 위장한 채 한탕주의를 노리는 이들 사이비 개미들을 제거해내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디지털화에 상당한 차질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이런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좋은 조건의 정부자금을 지원받아 엉뚱한 곳에 쓰거나 돈만 챙기고 사업장을 폐쇄하는 위장·불건전 벤처기업들이 국세청에 적발되었다. 괜찮다 싶은 벤처기업도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는 당장의 차익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작년 말 중소기업청에 등록된 4,934개 벤처기업 중 엄밀한 의미의 진짜 벤처기업은 17%밖에 안 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벤처기업의 80%이상이 무늬만 벤처라는 얘기다.
사이비 닷컴기업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는 28개국 공정거래당국과 150여개 정부기관 및 소비자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대대적인 사기성 인터넷 단속에 나서고 있는데 조사결과 1,600여개의 사이트가 사기성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경제의 디지털화 성공 여부는 이런 사이비 인터넷기업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가려내 퇴출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일은 벤처기업을 위한 온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시장에 건전한 질서가 지켜질 수 있도록 사이비 인터넷을 색출해내는 일이다. 진짜 개미 투자자를 보호하고 우리 나라를 인터넷강국으로 키우는 길이다.
/방민준 편집국 부국장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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