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슈퍼 점보기 시장을 놓고 정면 충돌할 조짐이다.정부 보조금 문제로 1992년 격돌했던 두 회사는 에어버스가 550-650석 규모의 최첨단 ‘A3 ’기종 개발에 착수하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여객기 분야에서 167억 달러어치를 수주, 보잉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에어버스는 11일 미국 리스사인 ILFC로부터 A320기 40대 등 모두 50대(32억달러 상당)의 주문을 받는 등 올해도 보잉과 박빙의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에어버스는 이 여세를 몰아 이달 26일 이사회 의결을 거쳐 ‘A3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세계 경제회복에 따라 비행 수송량이 연 5% 증가하고 있고, 400석 이상 비행기 수요는 화물기를 포함 2018년까지 3,5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돼 시장성이 있다는 게 에어버스의 판단이다. 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이어서 중동의 에미리트 항공이 10대, 버진 애틀랜틱 및 싱가포르에어라인이 16대를 각각 구매하기로 했다.
이에 놀란 보잉은 ‘A3 ’에 대한 시장수요가 미미해 과잉설비를 초래할 뿐이며, 기존 대형기종인 ‘보잉747’이나 에어버스의 ‘A340S’를 개량시키는 게 낫다는 논리로 역공을 펴고 있다. 현재 이 기종에서 시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보잉으로서는 ‘A3 ’개발이 성공할 경우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잉의 카드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다. 우선 ‘A3 ’개발비 120억달러중 40억달러를 에어버스 4개 출자 항공사의 정부가 부담할 예정이나, 이는 WTO 규정 위반이라는 게 보잉의 주장이다. 보잉은 또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이 자사의 독점력을 견제하기위해 에어버스 지원을 정당화해 왔으나 에어버스의 시장점유율이 자사와 비슷해 진 만큼 추가 지원은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샬린 바세프스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유럽 국가의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문제를 WTO에 제소할 수 있다”며 보잉을 측면 지원했다. 더구나 WTO는 최근 100석이하의 중형항공기를 제작하는 봄버디어 및 엠브레어사에 대한 캐나다 및 브라질 정부의 수출·개발 보조금을 삭감토록 시정조치한 바 있어 보잉측에는 유리한 국면.
하지만 슈퍼 점보기를 둘러싼 미국와 유럽의 갈등이 바나나, 쇠고기 등의 재판(再版)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영국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다. 1992년 정부 보조금 문제로 에어버스를 문제 삼았던 보잉은 유럽 시장 상실을 우려해 에어버스와 화해하는 한편 슈퍼 점보기를 공동 개발하는 방안까지 추진했었다. 이번에도 보잉이 ‘A3 ’개발에 참여하는 선에서 분쟁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슈퍼 점보기 개발이 WTO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미국와 유럽의 갈등의 골을 깊게 할 것인지, 아니면 초대형 비행기 시장의 독점 컨소시엄이 형성될 지 관심거리다.
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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