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서사가 파괴된 예술영화를 만드는 일 만큼이나 액션 영화를 잘 만드는 일도 어렵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관객은 ‘암흑가의 두 사람’, ‘볼사리노’ 같은 멋진 느와르의 추억을 기준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킬리만자로’는 ‘게임의 법칙’ ‘초록 물고기’로 이어지는 한국형 느와르 계열의 작품이다. 남자들의 힘의 세계를 그려냄으로 스토리가 단선적이다. 선과 악의 대결. 그 파격을 위해 고안된 장치가 여기선 ‘쌍둥이’이다. 주인공 해식과 해철은 쌍둥이. ‘기름밥 먹으며 형을 공부시킨’ 동생 해철은 제 아이와 자신에게 총을 당긴다. 조카의 피무덤에서 살아난 형이지만 안타까움은 없다. 진급을 앞두고 있는 자신의 미래가 더 걱정스러운 비인간적인 형이다.
인간적인 깡패 해철, 지극히 이기적인 형사 해식, ‘상식적’ 이분법에 어긋난 이 쌍둥이는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해철은 살아서가 아니라 죽어서 해식에게 더 큰 부담이다. 해식은 죽은 해철의 뼈를 어머니 산소 곁에 뿌려 주려 20년 만에 고향 주문진으로 내려가지만 거기엔 자신을 해철로 오해한 사람들뿐이다. 해식이 해철의 과거를 알게 되는 과정은 해식으로선 그에게 ‘굴복’하는 것이다. 해철 때문에 감옥에 갔던 종두조차 이렇게 말한다. “넌 해철이 반도 안돼.” 그를 종두에게서 빼내오려 모든 것을 포기한 번개(안성기)의 친절도 해식에겐 수수께끼이자 짐이다.
쌍둥이가 서로에 대해 투쟁하면서 다른 한 쪽의 행세를 한다는 발상은 츠카모토 신야의 ‘쌍생아’와 발상이 비슷하다. 그러나 ‘쌍생아’가 시종일관 암울함과 포스트모던 공간 배치로 컬트적 느낌을 전달한다면 ‘킬리만자로’는 느와르와 타란티노적 ‘일상’을 교배했다. 그러나 ‘교배’가 진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초반 그야말로 피가 흥건한 ‘핏빛 느와르’라는 표현은 초반과 마지막 총기 난사 장면을 제외하고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에 희석됐다. 긴장보다 이완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낀다. 게다가 익히 보아온 상투적인 일상이 반복된다면.
그러나 이런 단점은 느와르의 핵심인 두 남자, 안성기와 박신양의 연기로 어느 정도 상쇄된다. 배반의 업보를 안고 살아가는 늙은 깡패 번개의 객기와 누추함을 안성기는 느긋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태(胎)를 버리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 해식의 야심과 제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을 정도로 파괴된 해철의 피폐한 얼굴, 박신양은 두사람처럼 연기를 소화했다. 연극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중사(정은표), 종두(김승철)의 연기는 감초 이상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이재수의 난’의 시나리오 작가인 오승욱의 감독 데뷔작. 20일 개봉. 오락성★★★☆ 작품성 ★★★
박은주기자
jupe@hk.co.kr
■[인터뷰] '킬리만자로' 주연 박신양
“데뷔작 ‘유리’때와 비슷한 느낌, 상황이었다”고 했다. 힘들수록 재미를 느꼈다. 한겨울 찬물을 뒤집어 쓰고 정신이 가물가물할 만큼 얼음바닥에 몇시간씩 누워있어도 싫지가 않았다.
‘킬리만자로’를 선택하면서 박신양(32)은 두 가지 큰 부담을 안았다. 먼저 지난해 ‘아나키스트’의 출연 번복 소문에 따른 곱지않은 충무로의 시선. “그래, 얼마나 좋은 작품인가 보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단순히 1인 2역까지 하는 비중 때문에 ‘킬리만자로’를 선택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나의 얘기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편지’ ‘약속’의 성공으로 멜로드라마 배우로서 안이해진 연기를 타파하는 것도 절실했다. 의식적으로 변신에 신경쓰거나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작품 속의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머리로 사는 해식과 가슴으로 사는 해철이 갈등하는 ‘킬리만자로’는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해식과 해철은 쌍둥이 형제지만 한 인물의 이성과 감성의 두 모습일 수도 있다. 출세지향주의자인 형사 해철이 깡패였던 죽은 해식으로 변해가는 동안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영화를 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 가슴으로 사는 것이 후회는 많겠지만, 아름답고 좋다. 그도 생각이 많은 배우다. 그래서 너무 계산적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때문에 더욱 해철이 되고 싶어 발버둥쳤고, 그 감정이 그의 눈빛과 표정을 강하게 만든지도 모른다. “1년 만의 출연이라 힘이 많이 생겼다”고 달리 표현하지만.
이대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