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고속철도 차량 선정 로비 의혹 사건 수사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알스톰사의 국내 로비스트 최만석(59)씨가 고속철도 차량 선정과정에서 접촉하거나 로비를 벌인 정·관계 인사들을 어느 정도는 파악했으나 로비 실체에는 다가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최씨가 지난해 10월 한 차례 검찰 조사를 받은 직후 잠적한데다 알스톰사가 차량 공급업체로 선정된뒤 최씨가 홍콩의 미국계 은행을 통해 로비 대가로 받은 사례금의 사용처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알스톰사가 1994년 11월과 95년 5월 2차례에 걸쳐 최씨에게 송금한 사례금 1,100만달러중 구속된 호기춘(扈基瑃·51·여)씨가 챙긴 380여만달러의 사용처는 대부분 확인했다.
호씨는 상당액을 국내로 들여왔으나 부동산 구입 등 개인용도로 사용,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 자금이 건네진 흔적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따라서 수사는 최씨가 받은 720만달러의 사용처 파악에 집중되고 있다. 최씨가 93년 4월 방한한 알스톰사 회장에게서 “TGV가 고속철도 차량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문민정부 고위층에게 청탁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점으로 미뤄 로비 자금은 최씨를 통해 뿌려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당시 최씨가 빈번하게 접촉했던 인물로 C전의원, H의원 등 YS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최씨는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정·관계 인사를 접촉한 사실은 시인했으나 돈을 건넨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씨가 받은 720만달러가 국내로 유입됐는지 여부와 구체적인 로비 물증 확보를 위해 최씨 및 최씨 가족의 국내와 해외계좌를 추적중이나 해외계좌의 경우 홍콩 사법당국의 공조가 필요해 수사 진전이 더딘 상태다. 최씨의 신병 확보가 안될 경우 수사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호씨와 최씨가 로비과정에서 접촉한 인물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구체적 물증 없이 소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당장 정치인 등 중요인물을 소환할 계획은 없다”고 말해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마냥 최씨의 신병 확보만 기다릴 수 없어 수사 진척이 다소 더디더라도 최씨 계좌추적 등을 통해 구체적인 로비 경로에 접근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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