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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멀리있는 남편에 아이의 카네이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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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 멀리있는 남편에 아이의 카네이션을

입력
2000.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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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다녀온 큰 아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종이 카네이션이었다. 8일이 어버이날이어서 유치원 아이들 모두 카네이션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일곱살 난 아이가 만들었으니 조잡하고 엉성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이는 종이 카네이션에 줄까지 달아 내 목에 걸어주었다.그리고 카드도 내밀었다. 카드에는 “엄마 아빠, 이제 말 잘들을게요. 잘 키워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써있었다. 첫 머리의 ‘엄마 아빠’를 읽는 순간, 갑자기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은 집과 떨어져 경상북도 의성에서 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남편이 그곳으로 발령나자 함께 내려갔었다. 하지만 서울서 자란 아이들과 나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곳 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유달리 감성이 풍부한 큰 아이는 서울 친구들이 그립다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남편은 새벽같이 출근했다 한밤중에나 돌아오는 힘든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못해 늘 미안해했다.

그러기를 3년. 우리는 드디어 결심했다. 올 연말 공사가 끝나면 어차피 그곳을 떠나야하는 만큼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울서 1년 정도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서울로 옮겨왔다. 남편은 평일에는 공사 현장의 숙소에서 지내고 2주에 한번씩 서울로 올라온다.

큰 아이는 아빠가 서울에 왔다 내려갈 때마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가지마”라며 붙잡는다. 그런 아이가 오늘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준비했지만 결국 아빠의 목에는 걸어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날에도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 손잡고 나들이간 그날, 우리 아이들은 근처에 사는 사촌들과 뛰어놀았다. 어쩌면 아이들은 동네 친구나 사촌들과 노는 게 더 좋은 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을 아빠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다. 남편과 함께 살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강춘홍 서울 종로구 평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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