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플렉스 #113일 문을 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 지하 멀티플렉스(복합영화상영관)인 ‘메가박스 씨네플렉스’는 색색의 네온등이 시간을 잊게하는 거대한 사이버 우주선 같다. 중앙홀의 대형 전광판에는 예고편이 쉴 새 없이 방영되고, 박스오피스에서 입장권을 사면 입구 ‘게스트 서비스’에서 해당 상영관을 안내한다. 상영관은 무려 16개. 좌석수는 488석에서 작게는 116석까지다. 총 4,336석으로 동양최대 규모. 1개 필름으로 6개관을 동시에 상영하는 영사기가 갖춰져 있다.
영화관 안은 스타디움 한 부분을 잘라 놓은 것 같다. 앞뒤 의자의 높이 차이는 33㎝. “서장훈 뒤에 김미현이 앉아도 시야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앞뒤 좌석 간격은 105㎝이고, 의자를 펴도 50㎝의 통로가 나온다. 연인끼리 다정하게 앉으려면 팔걸이를 없애면 된다. 스크린의 높이를 낮춰 맨 앞줄에서도 고개를 쳐들고 보는 불편이 없다. 입장권의 상영전 100% 환불도 가능하다. 입장료는 일반 극장과 같은 6,000원.
극장 안팎에는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구입해 극장에서 먹으며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1,100평 규모의 메가웹스테이션은 컴퓨터게임대회장과 게임업체시연장. 가상체험극장인 3D터보라이드(24석)에서는 4분 50초짜리 디노 아일랜드2가 상영된다. 1만여대 동시주차가 가능한 주차장도 있다.
■멀티플렉스 #2
미국에 1년간 거주했던 직장인 이모(44)씨. 이전에도 그랬지만 미국에 다녀온 이후론 영화관에 거의 가지 않고 비디오나 보았다. 차를 가져가면 세워 둘 곳이 없고, 비좁은 좌석도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전 분당에 문을 연 CGV야탑극장에 다녀온 이후론 생각이 달라졌다. “앞에 씨름 선수가 앉아도 영화가 잘 보이겠더라. 꼭 미국 같더라.” 일주일에 한번씩 아내와 영화관에 가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4월에 문을 연 CGV야탑극장. 초록 카펫, 초록 커튼, 그리고 푹신한 초록 의자. 그리고 컵홀더(음료수 걸이). 성남시외버스 터미널이 입주 전이라 아직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 1998년 문을 연 CGV강변에 비해도 시설만은 경기도 최고 수준급.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예고편은 입체음향까지 갖추고 있어 ‘좋은 극장’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준다. 쾌적한 실내, 장신의 남성이 앉아도 다리가 앞좌석에 닿지 않는 넉넉한 공간이 있다. 아파트 밀집지역의 특성 때문에 ‘유아 휴게실’도 만들었다. 토요일 퇴근 시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가장 붐비는 놀이방에는 어린이 비디오 상영시설과 놀이 시설이 갖춰져 두시간을 놀리기엔 적당하다. 스크린이 좀 작은 것이 불만스럽지만 보기에 따라선 아늑한 분위기.
■원스톱 종합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더 이상 영화관이 단순히 영화만 보는 장소, 불편해도 할 수 없이 찾는 곳이 아니다. 여러 편을 한꺼번에 상영하는, 작품의 선택권만 주는 단순 복합관 만으로 이제는 관객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편안하고 즐겁게 영화를 감상하고, 다양한 오락과 취미와 쇼핑까지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원스톱(One Stop) 종합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1998년 제일제당이 미국 골든빌리지와 손잡고 서울 테크노마트에 강변CGV11을 열었을 때만 해도 국내 ‘멀티 플렉스’극장에 대한 성공 여부는 회의적이었다. 극장의 중심은 종로라는 오랜 고정관념, 지나치게 많은 상영관에 따른 작품수급 문제. 그러나 CGV는 젊은층의 ‘놀이복합공간’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에 자극받아 미국식 멀티플렉스가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서울 동대문 프레야타운에 MMC가 문을 열었고, CGV는 인천(14관, 3,522석), 오리(10관, 2,758석)로 확장해 나갔다. 31일에는 부산 서면에도 생긴다. 메가박스 역시 코엑스몰에 이어 2002년에는 대구에 10개관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짓는다. 서울 강남에는 센추리(동아수출공사)와 시네마시티(화천공사)도 들어선다. 백화점도 뛰어들었다. 현대백화점은 서울 목동점에, 롯대백화점은 이달 대전을 시작으로 광주, 울산, 부산에 쇼핑과 영화감상을 연결짓는 멀티플렉스를 만든다.
■극장 간의 치열한 살아남기 경쟁
이에 따라 기존 극장들과의 치열한 관객유치 경쟁도 불가피해졌다. 종로극장가의 중심인 서울극장이 20억원을 투자해 의자 앞뒤 간격을 넓히고 있는 것도 결국은 관객들에게 보다 나은 편의를 제공해 경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전략. 메가박스 김우택 본부장은 “극장도 서비스 차별화가 필요하다. 아직은 언제든지, 어떤 작품이라도 볼 수 있는 공간의 의미가 중요하지만, 차츰 질과 서비스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나 시설에 따른 가격(입장료) 차별화로 CGV 오리는 6월부터 ‘골드 클라스’제를 운영한다. 3만원에 비행기 1등석처럼 넓고 편안한 좌석과 식음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단일 대형 상영관이 사라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 6월이면 국내 유일의 70㎜ 상영관인 대한극장마저 작은 복합관으로 바뀐다. 시설투자에 대한 회수 때문에 흥행작을 동시에 여러 곳에서 상영하는 특정작품 과점현상 역시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영관이 많아져도 예술영화나 작은 영화가 설 곳은 여전히 없다는 점도 관객 서비스와 다양화 차원에서 멀티플렉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대현 기자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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