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의 9일 만찬회동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정치적 해석과 전망을 낳고 있다.만찬의 결과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협력’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됐지만, 그 뒤곁에서는 두 정치거물의 난해한 게임이 엄연히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두 전·현직대통령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신(新)양김시대의 부활’이라는 성급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이날 회동으로 엉크러진 김대통령과 김전대통령의 관계는 다소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 김전대통령이 독설과 앙금을 여전히 내보였고 금·관권선거 등을 문제삼았지만, 그 농도는 다소 희석된 듯한 느낌이다. 대외적으로 발표된 내용보다는 훨씬 더 깊은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이 있으며 정서적 거리감도 노출되지 않은 채 은근히 좁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양새가 두 전·현직대통령의 제휴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처럼 김대통령과 김전대통령이 정국의 중심적인 당사자로서 서로를 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김대통령은 김전대통령의 좌표를 현존하는 정치의 한 축에 놓고 있지 않다.
김전대통령의 영향력이 돌출행동으로 상당부분 훼손된데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야당인 한나라당에 그의 입김이 미칠 수 있는 여지도 거의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여권 핵심인사들은 신3김시대라는 말이 나오면 “현실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말이 안된다”고 일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이 김전대통령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지역주의에서 배태된 네거티브 정서의 완화, 화합의 정치라는 큰 흐름을 고려해서다.
남북정상회담까지 하는 마당에 전·현직대통령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망신스런 상황을 일단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지역주의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전대통령을 끌어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게 여권의 판단이다. 김전대통령이 부산·경남지역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해도 그의 분노를 통해 증폭되는 부정적 정서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여권 핵심부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를 우회하는 전략을 갖고있지 않다. 한나라당이 133석의 제1당인 상황에서 김전대통령과의 제휴로 야당을 교란하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식 편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확고히 하고 있다. 현 국면에서는 한나라당과 대화하는 것이 정국안정의 키라는데 여권 내부의 이견은 별로 없는 상태다.
문제는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점이다. 김대통령과 김전대통령이 이날 회동을 계기로 화합하는 방향으로 갈 경우 그 이후의 상황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
더욱이 총선에서 힘을 보여준 영남권이 지역적 연고성에 지금보다 더 기울 경우 김전대통령의 영향력은 증대될 여지도 있다. 최소한 두 전·현직대통령의 측근들은 사적인 친밀도에도 불구하고 외형상으로나마 적대적 위치에 서야했던 이중적 상황에서 벗어나 밀접한 접촉을 할 수 있다.
김전대통령의 아들인 현철(賢哲)씨의 복권, 홍인길(洪仁吉)씨의 사면이 곁들여진다면, 양측 인사들이 과거에 가졌던 우의가 상당부분 복원될 수도 있다. 이런 정서적 교감과 정국상황의 변화가 맞물리면, 후일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게 김대통령과 김전대통령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관계다.
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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