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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18)영미문학연구지 ‘안과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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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18)영미문학연구지 ‘안과 밖’

입력
2000.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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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매개로 삼는 문학 즉 넓은 의미의 영문학이 가장 풍요롭고 위대한 문학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이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인 것은 확실하다. 영문학이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것은 8세기 초의 서사시 ‘베오울프’ 이래 영어로 쓰여진 숱한 문학 작품들의 질적 우수함에도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더 현저하게는 미국의 경제력·정치력에 편승한 영어의 세계 지배에 힘입고 있다. 영어로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인류의 3분의 1을 잠재적 1차 독자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작가도 때로는 영어로 작품을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다른 유럽어 문학과 마찬가지로 영문학도 19세기 말에 한국의 독자를 만났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영문학 수용의 역사는 한 세기가 넘는다. 특히 지난 세기 후반 내내 미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 있던 한국에서, 영어영문학과는 거의 모든 대학에서 독립된 학과로 존속했다. 그리고 영문학 연구자들은 문학을 매개로 한국 사회와 영어권 사회를 잇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우수한 인문학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영문학계가 과연 그 큰 비중과 유리한 조건에 걸맞는 몫의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서는 영문학계 안에서도 이견이 많은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반성과 그 반성에 기초한 실천의 노력이 영문학계 안에 없는 것은 아니다. 1996년에 창간된 반연간지 ‘안과 밖’(편집 주간 김영희 과학기술원 교수)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안과 밖’의 부제는 ‘영미문학 연구’이고, 이 잡지를 펴내는 주체는 영미문학연구회다. 영미문학연구회는 젊은 영미문학연구자들을 주축으로 해서 95년 6월에 창립됐다. 이 연구회는 “영미문학의 연구와 성과의 교류 및 대중적 확산을 통하여 우리의 문학·문화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창립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영미 문학연구회는 영미 문학을 연구하면서도, 그 연구가 한국 문학과 문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관심은 ‘안과 밖’의 내용에도 반영돼 있다. 실상 ‘안과 밖’이라는 제호에서 ‘안’과 ‘밖’이라는 말 자체가 크게 보아 한국과 영어권에 각각 대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집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제호 ‘안과 밖’이 지닌 함의는 더 너르다. ‘안과 밖’이라는 제호에서 그 ‘안’과 ‘밖’은 학문적 연구와 사회적 실천, 학술적 전문성과 대중성, ‘문학적’인 것과 ‘비문학적’인 것, ‘고전’ 또는 ‘정전’과 ‘군소(群小) 작품’ 등 일반적으로 영미문학을 볼 때 얽매이기 쉬운 이분법적 틀의 양쪽 항을 지칭한다.

‘안과 밖’은 영미 문학의 영역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는 이런 형이상학적인 안팎 구분의 극복을 모색하되, 예컨대 해체론적 관점이 그렇듯 그 극복의 과정에서 자칫 빠질 수 있는 또다른 형이상학적 오류의 함정도 슬기롭게 비켜가는 참다운 지양을 추구한다고 선언한다.

‘안과 밖’의 표지에는 이 잡지의 영어 표제가 “In/Outside: English Studies in Korea”라고 표기돼 있다. 그러니까, 이 잡지의 부제 ‘영미문학 연구’는 ‘한국에서의’ 영미 문학 연구다. 김우창씨의 ‘한국의 영문학과 한국 문화’와 윤지관씨의 ‘타자의 영문학과 주체: 영문학 수용 논의의 비판적 고찰’을 묶은 창간호의 특집 ‘한국 영문학 연구의 쟁점’을 비롯해, 제7호의 특집 ‘영문학 교육을 진단한다’, 제8호의 특집 ‘강의실 안의 문학 작품’ 같은 기획은 모두 ‘안과 밖’의 작업이 ‘한국에서의’ 작업이라는 것을 표나게 드러내고 있다. 영미문학계를 넘어서서 세간에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던 고정난 ‘번역을 짚어본다’ 역시 이 잡지의 ‘한국성(韓國性)’과 긴밀히 관련돼 있다. 지난 달에 나온 제8호의 또다른 특집 ‘지구화와 민족 그리고 문학의 자리’는 ‘안과 밖’이 고답적인 영미문학 연구지가 아니라 늘 ‘지금_이곳’의 관점에서 여러 영역과 층위의 담론을 횡단하며 안과 밖을 살피는 넉넉한 잡지라는 것을 보여준다.

‘안과 밖’에 실리는 글의 주류는 논문과 비평이지만, 일반 독자의 눈길을 잡아끌만한 읽을거리도 적지 않다. 주로 고정난들이다. ‘번역을 짚어본다’도 그렇지만, 원로 영문학자들의 탐방기인 ‘한국 영문학의 어제와 오늘’, 영미 문학의 고전을 새로운 시각에서 읽어내는 ‘새로 읽는 고전’은 ‘안과 밖’이라는 일품요리의 맛을 내는 조미료라고 할 만하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입력시간 2000/05/0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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