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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두기교수 7일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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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두기교수 7일 별세

입력
2000.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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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민두기(閔斗基) 서울대 명예교수가 7일 오전3시 68세를 일기로 별세한 사실이 8일 뒤늦게 알려졌다.“조용히 묻혀 가고 싶다.” 오직 학문과 후학 양성에 매진해오며 한국의 중국사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민교수의 마지막 바람은 역시 견실한 학자의 모습이었다. “학자는 고독한 것”이라는 말처럼 조용히 묻혀 세상을 떠나고 싶어했다. 때문에 부인 박임정(朴林正), 외아들 경무(炅武)씨는 고인의 별세 소식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삼성서울병원에 조촐한 빈소를 차렸다.

하지만 8일 오후 빈소에는 뒤늦게 스승의 별세 소식을 접한 후학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금성(吳金成), 박한제(朴漢濟), 이성규(李成奎)씨등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이자 민교수의 제자 20여명이 모여들어 스승의 마지막 밤을 지켰다.

민교수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의 상징이었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1969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98년초 정년퇴임 때까지 30여년을 중국근대사 연구와 제자 양성에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중국근대사를 중국사 내면의 문제로 본격 연구한 ‘중국근대사 연구’(1973)를 비롯, ‘중국근대개혁운동의 연구’‘신해혁명사’ 등 숱한 저서를 통해 국내뿐 아니라 외국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며 세계적으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았다.

제자 양성에도 철저했다. 객관성을 요구하는 학문 풍토 정착을 위해 제자들이 학문 외의 분야에 눈을 돌리는 것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았다.

민교수는 97년 서울대 정년 퇴임 강의에서 “역사연구자는 아웃사이더의 입장에서 장기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역사가는 고독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독한 역사가가 많이 존재하는 사회가 진정 깨어있는 사회다”라는 말을 남겼다.

발인은 9일 오전7시. 장지는 경기 이천 신둔면. (02)3410-6911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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