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낙방한 우리 집 큰 딸은 ‘재수 거부’를 선언했다. 대학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학을 가지 않겠다니…” 부모로서 기가 탁 막히는 일이었다.아이는 마음을 돌려보라는 거듭된 설득에도 “죽으면 죽었지 재수는 싫다”고 버텼다. 재수를 해서까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인문계 고교를 나온 아이는 막상 대학에 떨어지니까 자신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일 뿐인 것 같다는 한탄도 했다. “12년의 교육을 받은 아이를 단지 한번의 입시에 실패했다고 해서 이렇게 참담하게 만들어 도 되는 것인가” 그때 나에게는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회의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10년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그때쯤은 대한민국의 성실한 시민으로서 작은 행복을 가꾸고 있을 거예요” 나는 아이를 믿기로 했다. 소설속에서나 나올 법한 ‘철없는 엄마’라는 소리를 듣을 수도 있는 결정이었지만 아이의 생각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2000년인 올해는 아이가 10년만 기다려 보라고 하던 바로 그 해이다. 아이는 지금 성실한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5년 전부터는 경제적으로도 완전 독립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에게 그 인생을 고스란히 맡겨놓은 채 별로 해준 게 없다. 전에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0년 과외금지조치가 내려졌고, 고3 2학기때인 89년 과외금지가 부분적으로 풀리기 시작했으니까 과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저 학교 선생님만 믿었었다. 이런 나를 우리사회는 ‘등신’취급을 한다. 하지만 ‘일류대병’에서 일찌감치 벗어났다고 해서 ‘등신 부모’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늦둥이 아들한테도 사교육비를 쓰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동안 4주간의 학원수강료 20만원이 사교육비의 전부였다. 아이는 고등학교 때 많이 놀았다. 취미생활도 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지금 대한민국 안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전풍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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