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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운지/어머니! 이제 제가 업어드릴께요

입력
2000.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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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어머니였고 대견스런 아들이었다. 카네이션을 건네는 ‘전봇대’아들과 허리춤 밖에 오지 않는 ‘과전만증(過前彎症)’어머니는 그들만이 깊이를 헤아릴 수 있는 모자간의 정으로 은혜의 마음과 내리사랑을 주고받았다.어버이날인 8일 잠실학생체육관. 차세대 한국 남자농구의 별로 꼽히는 205㎝의 중앙대 대형센터 김주성(21)은 이날 전국대학연맹전 1차대회 마지막 경기인 연세대전을 끝내자마자 관중석에 응원나온 어머니 이영순(42)씨를 찾았다.

대회때문에 미처 꽂아드리지 못한 카네이션을 들고서.(어릴 때 오른 다리를 크게 다쳐 3급장애가 된 아버지 김덕환(51)씨는 거동이 더욱 불편해진 듯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말없이 온화한 미소로 맞는 어머니는 그지없이 행복한 표정이다. 아들이 업히라고 등을 한껏 구부리자 쑥스러운듯 연신 손사래를 친다.

주변에 있던 동료선수의 어머니들은, 이런 이씨에게 부러운 눈길을 던지면서 눙치는 한마디씩을 던진다. “나도 아들한테 업혀 사진 한번 찍혀봤으면 원이 없겠다.”

-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김선수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신체적으로 불편한데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여건속에서 성장했다고 들었습니다. 청소년기에 자칫 빗나갈 수 있는 환경인데도 꿋꿋하게 자라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부모님의 신체적 장애가 어떻게 비칠 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일반인과 다름없습니다. 다른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걱정을 안끼쳐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훈련하다 다쳤을 때라도 일절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아직 시련이 뭔지 잘 모릅니다만 가난은 제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시련은 없다’는 신념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부모님의 장애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내심 꺼려한 적은 없습니까.

“제가 성장해 오는 동안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은 한번도 없거니와 지금도 전혀 괘념치 않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몸이 불편하시면서도 지금까지 자식들 앞에서나 집밖에서 신세타령 한마디 없이 묵묵히 살아오신데 대해 존경심을 느낍니다.

부모님의 강인한 정신력은 제가 운동을 하면서 힘이 들 때마다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부모님이 진정 자랑스럽습니다.”

(중앙대 정봉섭 체육단장은 “대회장이나 학교체육관에 부모님이 들릴 경우 주변의 시선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시중을 든다”며 “오히려 부모님이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공개적인 자리에 나서기를 꺼리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부모님이 평소 김선수에게 강조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커서 뭘 하든지 간에 항상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며 인간의 도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십니다.

지금도 잘못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지적하면서 그때마다 예의범절을 가르치십니다. 그 영향으로 저나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잘받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입니다.”

_부모님과는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눕니까.

“대회가 없는 경우 주말에는 집으로 가는데 예전에는 아버지가 말수가 적어 어머니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두분과 함께 대화를 나눕니다. 내용은 주로 운동에 관한 겁니다. 아버지가 경기를 보신 뒤 제가 잘 안되는 부분들을 지적해 주시고 저도 농구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올해는 특히 여동생(김향란)도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흥국생명 여자배구팀에 입단한 관계로 화제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어머니께 좀 묻겠습니다. 아버지는 오른 다리를 심하게 저시고 어머니는 과전만증이신데, 언제부터 몸이 불편하게 되셨는지요.

“(이영순씨) 주성이 아버지는 어릴 때 뛰어놀다가 다리를 삐끗했는데 당시 침을 잘못 맞아 결국 저렇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병명은 모르지만 심한 병을 앓고 난 후 장애를 겪게 됐습니다.

당시는 모두 형편이 어려워서 병원가기가 힘든 시절이었지요.”(과전만증은 가슴부분이 앞으로 심하게 휜 증상이다)

-김선수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듬직한 청년으로 성장한데는 남모르는 뒷바라지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이영순씨) 고생이야 있었지만 모두 다 주성이 본인이 착해서 잘 된 것이지요. …”(한동안 침묵하다 더 이상 말을 잇지못했다)

“(김주성) 아버지는 제가 운동을 시작하자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 미안하다’면서 ‘우리 서로 의지경쟁을 해보자’시며 술과 담배를 딱 끊으시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비록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이런 마음으로 모여 있었기에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분란은 없었습니다.”

-아버지(168㎝)와 어머니(158㎝)는 모두 키가 작은데 김선수와 여동생(184㎝)은 키가 큽니다.

“(이영순씨)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친정 어머니쪽이 키가 큽니다. 아이들을 집에서 낳았기때문에 당시 몸무게는 잘 모르지만 주성이는 출산할 때 커서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김선수는 결혼적령기에 이르렀을 때 배우자감에 대한 조건이 있다면 어떤 것들 입니까.

“평범한 여자로서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는 상대자라면 무조건입니다. 거기에다 보너스로 예쁘면 더욱 좋구요.”(웃음)

-키가 커서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웬만하면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버스에 자리가 없는 경우에는 환기통밖으로 머리를 내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웃음) 옷은 대개 이태원에서 구입합니다.”

-앞으로 프로에 가면 큰 돈을 벌텐데 그 돈을 어디에 쓸건 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 집안의 장남으로서 그동안 부모님이 겪으신 많은 고생에 대한 보람을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프로에 가서 돈을 벌게 되면 물론 모두 부모님께 드릴 생각입니다.”

●김주성은 누구

스타부재의 대학농구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중앙대 무적시대’를 이끌고 있는 골리앗 센터. 부산 해동초등-영남중(해운대중 3학년때 전학)을 거쳐 부산동아고에 입학하면서 농구를 본격 시작한 늦깎이지만 졸업반때는 초고교급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타고난 자질을 보였다.

중앙대 진학후 명조련사 김태환감독을 만나면서 더욱 다듬어져 한국농구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좌우시력이 0.2(콘택트렌즈 사용)이고 몸무게는 93㎏, 발크기는 330㎜이다. 한양대 김춘수감독은 “유연성과 스피드가 장신에 걸맞지 않게 뛰어나다”고 기량을 평가하면서 “그러나 더 무서운 점은 결코 자만하지 않는 성실성”이라고 말했다.

남재국

jk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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