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놀고 있는 PC를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슈퍼컴퓨터가 된다.’ 서울대학교 초대형구조해석연구실(책임 김승조·항공우주공학과교수)은 난해한 계산문제를 32-64대의 PC로 병렬계산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수백억원대의 슈퍼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연구실에서 최근 교내 PC 64대로 풀어낸 문제는 미지수 400만개인 공학계산문제. 이 PC들은 낮에는 주로 윈도에서 각자 연구활동에는 쓰이고 밤시간 리눅스로 전환한 뒤 네트워크로 연결해 병렬계산을 수행했다.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문제를 분할하고, 각 컴퓨터의 하드웨어 사양 등을 고려해 적절하게 할당하고, 풀이한 데이터를 다시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를 푸는 데에는 20시간이 걸렸는데 사실 국내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슈퍼컴도 풀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다.
이 ‘인터넷 슈퍼컴’은 기존의 PC 병렬연결과는 차이가 있다. ‘클러스터 슈퍼컴’도 PC 여러대를 연결한 슈퍼컴이지만 개별적인 PC작업을 겸할 수 없다. 또 외계인의 전파신호를 추적하는 외계지적생물체탐색(SETI)프로젝트가 자원자들의 PC를 밤시간에 활용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함께 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단순한 작업에 불과하다.
수백억원짜리 슈퍼컴도 한두해 지나면 고물 취급을 받고, 매년 큰 예산을 들여 슈퍼컴을 업그레이드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PC 인터넷 슈퍼컴은 대단히 유용하다. 김승조교수의 표현대로 “거의 무료로 무한대의 슈퍼컴퓨팅”이 가능하다. 먼저 항공기 인공위성 로켓 등 대형복합시스템의 정밀 설계, 우주환경에서의 가상실험, 구조물의 균열예측 등 기계·항공분야가 적용대상이다. 이 밖에 전혀 다른 분야 즉 원자로의 수명연장을 위한 정밀해석이나 질병진행에 대한 시뮬레이션, 오염토양을 정화시키는 환경연구, 반도체 열변형의 정밀해석 등 슈퍼컴이 필요한 곳은 많다. 게놈연구를 중심으로 한 생물학 역시 21세기 슈퍼컴이 가장 많이 쓰일만한 분야다.
‘공짜 슈퍼컴’의 활용도는 풀어내려는 문제가 병렬계산에 적합한가에 달려있다. 김교수는 “초기 입력해야 할 데이터용량이 방대하게 큰 기상분석 같은 경우 기존의 중앙집중형 슈퍼컴이 적합하다. 그러나 초기 데이터가 적고 적절히 병렬화할 수 있는 문제라면 성능이 떨어져 쓰지 않는 PC 8대만으로도 풀 수 있는 게 많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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