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왜 서울에서 3일을 허송했나’에 대한 반론나는 한국전쟁때 보병 제8사단에서 장교로 참전했고 정전협정후에는 지리산 공비토벌 부대의 의무지대장으로 활동하는 등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14년이상을 군에서 복무했다. 한국일보 5월1일자에 보도된 ‘한국전쟁 다시 본다’시리즈를 보고 몇가지 반론을 제기하고 한다.
필자인 건국대 신복룡교수는 “한국전에 앞서 스탈린이 남침을 만류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다른 구절에서는 “스탈린이 전쟁발발 다음날인 6월26일 ‘절대적으로, 전면적인 남침이 계속돼야 한다’고 김일성에 격려 전문을 보냈다”고 했는데 남침을 만류하던 스탈린이 전쟁이 터지자 계속 남침하라고 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대한민국 탄생이 미군 주둔하에 UN의 선거 감시하에 이뤄졌으므로 북한의 남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불가피한 것이었으므로 “‘예상치 못한’미군의 개입으로 당초 국지 한정전략이 전면전으로 수정됐다”는 신교수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
신교수는 “북한군 2사단과 7사단이 홍천에서 남진하다 서쪽으로 우향하여 수원을 공격한 것은 수원 정도에서 더이상 남하할 계획이 없었던 증거”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같은 독재국가에서는 작전계획이 경직돼 있기 때문에 서울 이남으로의 진격은 계획된 시간표에 따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수도를 점령했으니 전열정비와 함께 충분한 정찰이 필요했을 것으로 가정할 수도 있다.
신교수가 “수원 남쪽의 지도가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진계획이 없었다”고 말한 것도 문제가 있다. 작전지도는 해당 작전지역에만 우선 지급되는 것이다. 작전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타지역 지도가 미리 지급되는 것은 군에서 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신교수는 “한국의 장마철이 7월이므로 그 이전에 단기전으로 끝마치도록 하라는 평양주재 소련 군사고문의 사전 권고가 있었고, 7월 장마철 이전에 끝내려면 단기전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부산까지 가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북한군은 비오는 날과 밤에 전투하기를 좋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군 수뇌의 호전적 전의는 대단한 것이어서 서로에 불편한 기후를 더 좋아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울러 “북한군이 6월30일 오전 비로소 도강 장비를 갖추고 도하작전을 시작했다는 것은 애당초 남한전역을 장악하려는 작전을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이라는 신교수의 주장에 대해 ‘계획된 도강작전을 예정대로 진행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왜 안되는지 묻고 싶다.
/정환영 한양대의대 명예교수·혜화신경외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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