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뉴욕에서 한통의 이메일이 왔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공부한다는 이소경씨. 그녀는 기자에게 ‘독특한 스타일과 깊이 있는 작품’을 쓰는 한 사람의 작가를 알고 싶다고 주문했다. 작가 김진숙(35).창백하고 차갑다. 화장기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 그리고 싸늘한 말투. 하지만 MBC 이재갑 책임연출자(CP)는 그녀를 ‘마음이 뜨거운 작가’라고 평한다. 이처럼 그녀는 양 극단에 서 있다. 작품도 그렇다. 주제 의식이 강하고 사실적이라는 호평과 왜곡과 인기를 의식한다는 비판, 이렇게 엇갈린다. 정통 농촌드라마 ‘전원일기’를 썼는가 하면 감각적인 트렌디 드라마 ‘예감’도 쓴 작가이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무용을 하다 집안이 몰락해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하버드대학 공부벌레들’를 보고 법학공부가 재미있을 것 같아 대구 대학 법학과를 진학했다. 막상 법학이 재미없어 대학다니며 한일이라곤 책읽고 영화 보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졸업한 뒤 한참동안 백수였다. 백화점을 찾았다 백수인 미혼여성은 카드 발급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분개할 때쯤 MBC문화원 작가반 수강생 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쓰는 것밖에 없다고 여겼고, 순수문학보다는 대중문화 관련 일을 하고 싶었어요.”
강사였던 MBC PD가 그녀의 글을 보고 극본을 의뢰했다.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졸업하고 백수로 전전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200만원을 거머쥐게 됐다. 1993년 MBC 베스트극장 ‘여성시대’ 극본의 원고료였다. 작가를 평할 때 그 사람의 첫 작품을 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비평가의 지적이 있다.
자신의 세계관과 정열을 가장 많이 쏟기 때문이다. 김진숙을 파악하려면 ‘여성시대’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여성시대’에서 일과 사랑, 가정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네명의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각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네명의 주인공은 실제 자신과 주위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이처럼 주위를 아는 사람들을 극중 캐릭터로 전환시켜 글쓰기를 한다. 그녀의 출세작, 상업적(시청률) 성공을 거뒀지만 혹한 비평을 받았던 MBC 미니시리즈 ‘예감’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친구였고,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MBC 주말극 ‘사랑과 성공’의 주인공은 친척이 모델이 됐다.
지난주 새로 시작한 MBC 주말극 ‘사랑은 아무나 하나’역시 쌍둥이 친척 자매의 이야기를 등장시켰다. “항상 극본을 쓸때 실제 모델을 근거로 글을 쓰기 때문에 어렵지 않아요. 의도한 바를 어떤 단어를 구사해낼까 고심할 때가 힘들뿐이지요.”
“작가란 도망가도 괴롭고 안도망가도 괴로운 사람”이라는 말로 자신의 작가관이자 드라마관을 드러낸다. “자기 인생이 별 볼일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작가로서의 보람은 무엇일까? 자신의 드라마를 본 시청자가 드라마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삶에 자신감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나는 시청률을 의식한다”고 단언하면서 시청자가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청률이 높은 데에는 재미든 감동이든 시청자를 흡입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집필에 들어가면 하루 12시간 꼬박 컴퓨터 자판을 두둘기며 대본을 고치고 또 고친다. 마감에 임박해서야 극본을 넘겨 연기자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스타일이다.
결혼은? 인연이 없는 모양이고 일하는 것이 좋아 당분간 생각 안한다고 했다. “김정수 선생처럼 따뜻한 드라마를 많이 쓰고 싶어요. 대중을 위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약력
1965년 부산출생
1985년 대구대학교 법학과 졸업
1993년‘베스트극장-여성시대’(MBC)
‘한지붕 세가족’(MBC)
1995년‘전원일기’(MBC)
‘찬품단자’(MBC)
1996년‘6·25특집극-낫’(MBC)
1997년‘예감’(MBC)
1998년‘사랑과 성공’(MBC)
2000년‘사랑은 아무나 하나’(집필중·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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