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은 난치병이다. ‘손이 잘리면 발로라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기가 힘들다. 최근 주이스라엘대사가 카지노 도박으로 수천만원을 잃은 사실이 알려져 소환된 것은 도박이 어느 특정인에게 국한된 호사취미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교수의 도움말로 도박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본다.■도박은 뇌질환의 일종이다
도박은 개인의 의지로 고칠 수 있는 ‘습관’이 아니라 뇌의 충동조절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일종의 ‘뇌질환’이다. 신체에 치명적 영향은 없지만 자기 행동을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주식중독, 사이버중독, 쇼핑중독과 유사한 중독 현상인 것이다. 의학용어로는 ‘병적 도박’ 또는 ‘도박광’으로 불리는 충돌조절장애의 일종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4.1%가 도박 중독
도박중독자는 외국의 경우 적게는 1-2%, 호주처럼 도박이 성행하는 나라는 6%까지 보고돼 있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소장 이시형)가 지난 해 국내 20세 이상 성인 남녀 700명을 조사한 결과 4.1%가 도박중독이었고, 중독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6.9%로 나타났다.
남성만 놓고 보면 7.4%가 도박중독, 10.5%가 중독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6개월간 도박 경험을 조사한 결과 대졸 이상이 48.4%로 중졸 이하(32.6%)보다 높았다. 또 월 300만원 이상 고소득자가 47.6%로 100만원 이하 저소득자(31.3%)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카지노, 마작, 빠찡코, 경마 등을 즐기는 사람이 화투나 장기 도박자보다 중독에 걸릴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았다. 절도죄의 35%, 비폭력 범죄의 40%가 도박과 관련 있고, 도박중독자의 20%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는 보고도 있다.
■도박중독자는 스릴을 좋아한다
그러면 도박중독에 쉽게 빠지는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일종의 뇌기능장애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어떤 이유로 뇌의 조절기능이 취약해진 사람이 도박환경에 노출되면 쉽게 중독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대개 스릴을 추구하는 성격이다. 뭔가 끝없이 새롭고 강렬한 자극을 필요로 한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회분위기도 도박중독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특히 청소년기에 도박환경에 노출되면 헤어나기가 어렵다. 우울증 환자들도 도박중독에 빠지기 쉽다.
■도박중독은 본인 의지로 끊기 어렵다
일단 도박에 중독되면 자기 의지로 끊기가 쉽지 않다. 다른 중독증과 마찬가지로 도박을 끊으면 우울증, 불안감, 불면증 등의 금단(禁斷)증상을 보인다. 술기운이 떨어진 알코올중독자가 다시 술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도박중독 증세를 보일 때는 가능한 한 빨리 적극적인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중독자는 도박을 절대 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족 등 주변 사람이 강제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치료는 약 3개월간 격리·입원시킨 뒤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치료, 심리치료 등을 실시한다. 알코올중독 치료제로 쓰이는 ‘날트렉손’을 투여하면 도박욕구가 감소하는 등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중독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격적으로 황폐해지고 사회 복귀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도박중독 증세가 보이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도록 유도해야 한다. ‘단(斷)도박 모임’에 참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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