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복역 의아들 석방소식에...“내가 재만이 가슴에 오히려 꽃을 달아줘야겠어요.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이런 날이 있기를 눈물로 빌어왔어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의(義)아들 최재만(崔在萬·48)씨의 ‘19년만의 출소’ 소식을 들은 구 상(具 常·82)시인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아파트 자택에서 눈시울을 밝힌 채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낳아 기른 아들은 아니지만 최씨는 스스로 노시인의 품에 찾아 날아든 소중한 아들이었다. 지난해 일본에서 풀려나 귀국한 권희로(權嬉老)씨의 두 손을 부여잡으며 “재만이도 빨리 억울함을 벗어야 할텐데”라며 눈물을 북받치게 했던 애틋한 아들이었다.
구시인이 최씨와 ‘부자의 연(緣)’을 맺게된 것은 13년 전. 박삼중(朴三中·부산 자비사 주지)스님을 통해 1981년 경기 시흥 농협청계분소 직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형 집행을 기다리던 최씨를 알게 됐다. “처음엔 흉악한 살인범으로만 알았는데 절절한 재만이의 편지를 보고 ‘억울한 사람이구나’하고 확신했지요.”
구시인과 박삼중스님, 사형확정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배명인(裵命仁)변호사의 탄원으로 최씨는 1988년 무기로 감형됐고 곧 “평생 아버지로 모시고 싶다”는 최씨의 편지가 날아 들었다.
구시인은 아들이 죽음에서 살아나자 이번엔 자유의 몸으로 만들기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등에 끊임없이 석방탄원서를 내고 각계에 무죄를 호소하며 다녔다. 교통사고로 불편한 다리도, 당뇨병과 두 차례에 걸친 폐수술도 부정(父情)을 막지 못했다.
88년 출간한 시집 ‘인류의 맹점(盲點)’에 실린 시 ‘어버이날에 온 편지’에는 아들에 대한 노시인의 애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어버이날에 맞춰서 교도소에 있는 의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 ‘아버님, 올해도 꽃 한 송이 가슴에 달아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마음만 전하옵니다’는 사연이었다 /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이 애비, 그래도 한 달이 머다하고 안부를 물어오고, 나는 석 달에 한번쯤이나 답장을 쓰고 / 철창 속에 있는 그 애를 내가 위로하고 격려하기는 커녕 / 도리어 그 애에게서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과 그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깨우치고 있다….”
“먼저 세상을 뜬 두 아들 때문에 재만이를 대하는 마음이 더 각별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구시인은 “부자의 연을 맺은 것도, 부처님 오신 날(11일)에 즈음해 풀려나는 것도 모두 인연일 것”이라며 “이제 재만이가 20년을 기다려준 처, 그리고 장성한 두 아들과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최재만씨 누구인가
1981년 2월19일 경기 안양 역전우체국 금고를 털려다 붙잡힌 최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13일 전 발생한 경기 시흥 농협청계분소 이모(당시 38세)씨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982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최씨는 재판과정에서부터 줄곧 “경찰의 고문을 견디지 못한 거짓 자백”이라며 살인사건과는 무관함을 주장해 왔다.
이후 구 상 시인 등 각계 인사들의 탄원 등으로 강압수사 논란이 일면서 최씨는 1988년 무기로 감형됐다.
지난달 17일 가석방이 확정돼 대전교도소에서 천안개방교도소로 이감, 10일 출소를 기다리고 있는 최씨는 최근 ‘아버지’ 구시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진실만은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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