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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에세이 / '性프로그램'심의 소외당한 시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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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에세이 / '性프로그램'심의 소외당한 시청자

입력
2000.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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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여러가지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중에 가장 황당한 것 중의 하나가 아마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일 것이다. 그러나 방송 PD로서 가장 황당한 사건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방송이 나가지 못할 때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SBS 사내의 사전 심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름다운 성’이라는 프로그램 첫 회가 불방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느낀 심정의 일단을 말하려 한다.불방 통보를 받고 맨 처음 나온 나의 본능적 반응은 나의 가치 기준에 관한 혼돈 그 자체였다. 방송 생활 15년 동안 제작해 온 나의 프로그램들을 돌아볼 때 내 생각이 매우 건강하다고 내세울 것까지는 없지만, 그나마 이 사회의 보편적 사고체계를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며 약간의 개혁적인 성향을 띤 보통사람으로 스스로 평가하던 터였다. 자괴감과 혼돈 그리고 허탈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밀려왔다.

내가 성인들의 눈 높이에 맞춘 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리의 문화가 공개의 문화, 솔직한 것이 미덕이 되는 문화로 방향을 잡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아름다운 성’은 기획 단계부터 이런 고민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아름다운 성’이 불방되는 과정에는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닌 세상을 읽어내는 시각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심의 잣대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회사의 심의팀은 아직 공중파에서는 이르다는 신중론을 보였고 , 나는 세상사람들의 수준과 제대로 된 솔직한 성문화에 대한 갈증의 정도를 볼 때 이 시점에서 방송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 논란의 과정에서 또 하나 내가 느낀 것은 이런 상충되는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 있어서 정작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이 철저히 소외되었다는 점이었다.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인지 좋아하는 프로그램인지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누군가 다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자만심일지도 모른다. 어느 선배 PD가 한 말이 생각난다. “시청자는 무서워, 너무나 정확하니까.”

박정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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