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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를 살리자](4) 주먹구구식 운영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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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를 살리자](4) 주먹구구식 운영 벗어나야

입력
2000.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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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려는 다리를 땜질만 했다.”국내 대표적 교향악단의 기획 담당으로 10년 넘게 일하다 최근 그만둔 A씨는 자신의 ‘헛고생’을 그렇게 요약했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애써봤자 교향악단 발전은 틀렸다는 자괴감의 표현이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주먹구구식 운영을 지적했다. 오케스트라는 최소 60명에서 100여명의 연주자가 있어야 한다. 큰 덩치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안된다. 버팀대로 돈과 체계적인 운영이 필요하다.그런데 그게 부실하다는 것이다. “참 용케도 굴러왔다”고 그는 말했다.

운영에 관한 한 국내 오케스트라는 거의 낙제점 이하다. 22개 시립 교향악단을 비롯한 공립 교향악단은 대부분 별도 사무국 없이 지자체 산하 여러 예술단의 하나로 통합 관리되고 있다. 교향악단의 특성은 잘 고려되지 않고, 재정과 인사 등 주요 권한은 공무원 손에 있다.

단원을 뽑거나 악기를 사려면 일일이 결재를 올려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운영의 자율성이 이처럼 제한된 상태에서 전문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현실에서 ‘지원은 조금, 간섭은 많이’로 변질됐다.

2년 전 서울시향의 찢어진 북 사건은 상징적이다. 큰 북이 찢어졌다. 가죽 갈 돈을 달라니까 서울시 조례에 따라 조달청 단가로 입찰에 붙이라는 지시가 돌아왔다. 가죽 한 장 팔려고 입찰에 응할 업자가 없고, 있다 해도 조달청 단가라는 게 워낙 낮아서 질 나쁜 제품이 걸릴 거라는 사정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찢어진 북으로 연주했고 그 사실이 언론 보도로 망신을 사자 다음날로 해결됐다. 관료행정의 경직성이 빚은 촌극이다.

외국 오케스트라는 어떤가. 영국 BBC심포니는 오케스트라 사무국에 콘서트, 기획, 계약, 오디션, 무대, 마케팅의 분야별 담당자와 악보계 등 10명의 운영인력이 있다. 홍콩필 사무국도 재정, 행정, 마케팅, 홍보, 무대, 예술가와 단원 관리 등 분야별 전문인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KBS교향악단에 9명으로 구성된 사무국이 있을 뿐, 다른 오케스트라는 고작 1~2명의 기획 담당이 기획·홍보를 맡고 있다. 지휘자·협연자 섭외, 단원 관리, 연주곡 선정, 공연 인쇄물 제작, 홍보, 입장권 판매, 무대에 악기 배치하고 끝난 뒤 운반하는 것까지 대부분 혼자 도맡는다. 홍보만 하기도 벅차다. 본격적인 마케팅은 전무하다. 장기 전략을 짜는 건 불가능하고 그때그때 공연 때우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다.

돈 걱정은 어느 나라 오케스트라나 마찬가지다. 수지를 따지면 대부분 만성 적자다. 많은 단원을 거느리다 보니 인건비 지출이 막대해 수입 올리기가 힘들다. 국가나 지방정부, 민간 등의 외부 지원 없이 홀로서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는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반 기업의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마케팅에 힘쓰는 등 적극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는 그런 일을 할 전문 인력도, 의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술단체를 지원하라는 목소리만 컸지, 재정 자립도를 높이려는 자구책 마련에는 소홀하다. 교향악단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지원만 요청하는 시대는 지났다. 적자생존 원칙을 예술단체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영 마인드의 도입은 교향악단 생존과 발전에 도움이 된다.

/오미환기자

입력시간 2000/05/0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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