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백색 화면만을 추구해온 작가 이동엽(54)의 개인전이 5월 3일부터 16일까지 박영덕화랑에서 열린다.‘사이_ 명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1993년 헤나켄트갤러리 전시회 이후 작가로선 7년만에 갖는 개인전.
하얀 화면에 수직, 혹은 수평의 엷은 붓자국만 남기는 이른바 백색작업을 그가 처음 화단에 선보인 것은 1972년. ‘무(無)의 지대’라고 명명하며 그가 내놓은 백색화면은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평면일석상(평면회화에 주어진 일등상)을 수상하며 당시 화단에 하나의 충격적 사건으로 대두됐다. 70년대 초 국내화단은 서구양식을 두서없이 도입했던 시기로 모더니즘에 대한 연구나 이론이 거의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다.
당시 백색파문은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한국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으로 소개돼 국내 작가가 외국에 나가 전시회를 갖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든 시절, 이동엽은 1975년 박서보 등 5명과 동경화랑에 초대돼 ‘백색 5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후 이동엽은 그의 선배 격인 이우환 윤형근 박서보 등과 함께 70년대 한국미술계를 풍미하던 단색화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됐으며, 80년에는 한국일보사 주최 제7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또 한국의 전통적인 백색을 놓고 한국과 일본 미술계에 일어난 이른바 ‘백색논쟁’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그가 30년이상 고수해온 백색 작업은 이번 전시회에서도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70년대 흰색 바탕에 윤곽만 형태화한 컵시리즈에서 80년대부터는 ‘사이(間)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다. 하얀 화면에 푸른 빛, 혹은 회색 빛의 묽게 희석된 붓자국과 이 붓자국 사이로 미세한 틈새가 드러나게 한 ‘사이 시리즈’의 최근 작들은 작품 사이즈를 조금 줄여 여러 개의 작품을 집합시켜 놓았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이다.
자신의 백색화면에 대해 이동엽은 “나의 그림은 평면이 아닌 ‘직관적 공간’”이라면서 “원근이 그려지지 않았다고 나의 그림을 평면화로 인식하지는 말라. 수십번 반복해낸 하얀 붓질, 그리고 붓자국 속의 하얀 틈새를 통해 우리 정신 영역의 무한대(無限大)를 나타내고 싶다”고 말했다.
문외한에게는 그냥 하얀 평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작가는 “나의 흰색은 튜브의 색깔이 아니요, 팔레트의 색깔이며 이 자연색을 통해 동양의 사상, 순환의 세계까지도 엿보라”고 열변한다. 관객과 화랑을 위한 맞춤 그림을 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작가들이 시류에 편승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요즈음, 애써 유행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해온 작가의 순결한 화면. 평론가 김현도씨의 말처럼, 하얀색에 대한 집착이 한때 엄청난 스폿라이트를 받았던 작가의 명예욕 때문인지, 또는 작가적 완고함 때문인지, 또는 전위의식의 산물인지는 관객들 나름대로 해석해볼 일이다.
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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