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다 보면-협종망치삶이란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대상은 다르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희구일 수도 있고, 올바른 세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기다림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유희하거나, 때로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기다림의 의미를 찾아가는 연극들.
극단 오늘의 ‘고도를 기다리다 보면?’. 우선 제목에서, 개그라도 연상케 하는 듯한 유쾌한 패러디다. 그러나 제목이나 말장난 차원의 패러디에 머무르지 않고, 형식과 내용에서도 변주가 이뤄진다.
에스트라공이 고집장이 주주로, 블라디미르는 사람좋기만 한 삐삐로 변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그들은 이제 고도를 기다리지만 않고, 찾아 떠난다. 임영웅씨가 고도를 연민의 정으로 해석하는 반면, 젊은 각색·연출자 위성신은 고도를 우리가 찾아 떠나야 할 희망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원작이 황량한 둔덕 둘레서만 이뤄진다면, 이 배경은 다양하다. 사막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바닷가(땅끝), 전쟁터(폐허), 길위(방랑) 등지로 이어진다. 희망 찾아 떠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원작이 지닌 역사와 권위의 거푸집을 깨고, 패러디 문법을 적극 도입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경쾌한 대사들은 최근 젊은이들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으로 성행하고 있는 문자 메시지 등 말장난을 발빠르게 차용했기 때문. 30대 배우들의 경쾌한 몸놀림에, 시간을 때우기 위해 부르는 ‘욕(辱) 송’ 등이 양념으로 곁들여 진다. 10-6월 30일까지 소극장 오늘·한강·마녀. 화-금 오후 7시 30분, 토·일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02)762-0010
극단 여인극장의 ‘협종망치(脅從罔治)’는 폭행과 모욕으로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 놓은 어떤 사회지도층의 이야기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총선 후보 문형근이 그녀에게 감금돼 과거를 추궁받고, 자살에까지 내몰리기까지의 심리 게임이다. 어둠 속에서 총성만이 들리는 맨 끝장면은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밝히지 않아, 관객은 막이 내리고 나서도 극에서 풀려나지 못한다. 여기서 기다림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또 다른 긴장으로 이어진다.
‘산씻김’, ‘불가불가’, ‘넉씨’ 등 컬트적 화제작을 만들어 온 극작가 이현화(58)씨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1995년 ‘키리에’에서 연출자 강유정(68)씨와 처음으로 함께 작업을 한 이래 두 번째의 공동 작업이다. 객석의 심리를 죄었다 푸는 노장다운 테크닉에, 권경희 송희정 등의 연기 경합이 맛을 더한다.
제목은 서경(書經)에서 딴 말. ‘위협받지도 않았는데도 부도덕한 집단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죽이라(협종망치 섬궐거괴:脅從罔治 殲厥渠魁)’는 뜻이다. 한 여성을 짓밟고도 권력의 그늘 아래 들어가, 천연덕스레 사는 문근형에게 내리는 단죄의 부적이다. 9-22일 문예회관대극장. 매일 오후 4시 7시 30분(월 오후 4시 공연 없음). (02)732-4343
장병욱기자 aje@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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