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흙비가 내려 낮이 밤처럼 어두웠다(王都雨土晝暗)”-백제 무왕(武王) 7년(서기 606년) 3월.“하루종일 흙비가 내렸다(雨土竟日)”-백제 근구왕(近仇王) 21년(서기 174년) 4월.
역사적 문헌에 기록된 ‘흙비(雨土)’.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흙모래, 즉 황사(黃砂)를 가리키는 말이다. 황사현상은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우리 선조들이 정확히 관측했다는 사실이 전영신(기상연구소 응용기상연구실)박사팀에 의해 밝혀졌다. 전박사는 지난달 27-28일 공군 73기상전대에서 열린 기상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삼국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의 황사현상’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전박사가 삼국사기, 삼국유사, 문헌비고, 조선왕조실록, 천변초출록(天變抄出錄) 등에서 황사 기록을 정리한 결과 황사현상의 기록은 서기 174년 신라 아달라왕(阿達羅王) 2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토(雨土)’라는 표현이 황사에 대한 첫 기록이다.
연구결과 삼국시대 황사관련 기록은 7건, 고려시대는 48건, 조선시대 46건, 일제강점기 11일이 발견됐다. 고려·조선시대의 기록은 다른 어느 나라의 기록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편이다. 명종 5년 3월22일 기록은 “서울에 흙비가 내렸다. 전라도 전주와 남원에는 비가 내린 뒤 연기같은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으며, 기와와 풀과 나무에는 모두 누르고 흰 빛깔이 있었는데 쓸면 먼기가 되고 흔들면 날아 흩어졌다. 25일까지 쾌청하지 못하였다”고 해 최근 황사현상을 묘사한 듯한 생각이 든다.
전박사는 “고려시대부터는 안개를 7가지로 세분화해서 관측하고, 쉽게 혼돈될 수 있는 황무(黃霧)와 황사를 정확히 구분하는 등 우리 선조의 기상관측 수준이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 황사를 중국의 황토와 연관짓는 분석에는 이르지 못했다. 황사는 하늘의 벌쯤으로 여겨져 왕이 근신하고 풍악을 금하는 등의 대처를 했을 뿐이다. 바람에 의해 쌓인 중국의 황토지대는 이미 180만년 전 형성된 것이지만 중국의 황토가 장거리 이동한다는 사실은 20세기 초에나 밝혀졌다.
전박사는 “우리의 기록은 서구에 비해 역사가 길고 중국에 비해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이 풍부해 장기간의 기상현상을 연구할 수 있는 훌륭한 자료”라며 “고기후 연구가 발전하면 장기 예보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흡기질환과 오염등을 유발, 심각한 환경공해로 떠오른 황사. 우리 역사문헌은 삼국시대부터 황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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