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김갑동 지음, 일빛 발행허준의 동의보감 연구/김호 지음, 일지사 발행
역시 출판계는 TV에 민감하다. KBS 1TV ‘태조 왕건’과 MBC ‘허준’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출판계가 본격적으로 ‘TV 따라잡기’에 나섰다. 고려와 왕건 관련 서적은 올해 들어서만 16종이 출간됐고, 10여년 전 출간됐던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지음, 창작과비평사 발행)은 이미 드라마가 첫 방영된 지난 해 11월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특히 사극 ‘허준’과는 달리 원작 소설이 없는 ‘태조 왕건’은 놀랄 만큼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작가 이환경이 직접 쓴 소설 ‘태조 왕건 1, 2’(밀알)를 비롯, ‘궁예’(태동) ‘만화로 보는 태조 왕건’(문공사) ‘산전수전 고려사’(푸른나무) ‘인물로 읽는 고려사’(청아) 등 소설, 전기, 만화, 학술서가 망라됐다.
지난주 출간된 책으로 대전대 역사철학부 김갑동 교수가 쓴 ‘김갑동 교수의 태조 왕건’은 내용의 충실도와 깊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책은 왕건, 궁예, 견훤 등 통일신라시대 말기 세 영웅의 삶을 훗날 고려 태조가 되는 왕건에 초점을 맞춰 그렸다.
원성왕 경문왕 헌강왕 진성여왕으로 이어지는 신라 말기의 혼탁상, 궁예의 태봉(896년)과 견훤의 후백제(900년) 건국 과정을 조망한 뒤 왕건의 등장과 집권, 고려(918년) 건국 과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드라마 인기에 편승해 무임승차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내용 대부분이 사료에 근거해서 쓴 정사(正史)라는 점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고려사’ ‘동사강목’ 등 저자가 인용하고 준거로 삼는 고문헌만 24종이다. 참고한 단행본과 논문은 부지기수이다. 따라서 드라마가 감동적으로 그렸던 세 영웅의 삼자대면이라든지, 세달사의 사미승이자 궁예의 모사인 종간(김갑수 분) 등은 이 책 어디에도 없다.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인 김호 박사가 자신의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새롭게 손질해 지난 주 출간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는 드라마가 내세우는 허준(전광열 분)과 양예수(조경환 분)의 대결구조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 드라마가 아직 다루지 않고 있는 의서 ‘동의보감’(광해군 2년·1610년)의 편찬과정과 내용을 조목조목 연구한 책이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역시 허준과 양예수의 관계. 두 사람과 절친했던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眉巖日記)’를 근거로 당대 내의원 최고의 의원이었던 양예수가 오히려 허준의 스승이었음 밝힌다. 하지만 책은 이같은 세류(世流)에 얽매이지 않고 ‘동의보감’을 의서로서 꼼꼼이 고찰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둔다. ‘동의보감’25권 중 첫 권을 열면 바로 보이는 인체 내부도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를 다른 의서에 나오는 인체 내부도와 비교해 허준의 인체관을 살피는 게 대표적 사례. 출판 마케팅의 일환인 ‘TV 따라잡기’가 그나마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자 존재이유로 받아들여진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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