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를 성실히 신고하고 납부하는 사람이 있다. 5억여원의 소득세를 냈다는 그는 요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다. 정부가 투신사에 5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뉴스를 차 안에서 듣고는 무의식적으로 난폭운전을 하게 되더라고 토로한다.도대체 책임지는 사람은 없이 공적자금 빨아먹는 투신을 정부투자기관으로 남겨두는 정부의 운용방식에 불만이다. 회사가 그 지경이라면 임직원 봉급과 경비가 크게 깎였을 것인데 정말 그런지 알고 싶다고 한다.
■이 성실한 억대 납세자의 불만을 들어보면 정부예산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다. 에누리없이 많은 세금을 내다보니 정부가 세금을 거두고 예산을 쓰는 일에 매우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치우는 것을 볼 때면 관청으로 달려가 기관장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다고 말한다. 또 세금을 많이 내야할 사람이 적게 내는 것이 그렇게 눈에 잘 보이고, 이게 속을 끓게 만든다고 한다. 투명하지 않은 세상에서 투명하게 사는 고달픔인 것이다.
■핀란드에서 온 어느 기업인은 소득의 63%를 세금으로 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불만이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떤 일에 쓰여지며 그게 국가뿐 아니라 자신과 가족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가 아주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갑근세율은 최고 40%이다. 그런데 40%를 내는 한국인이 63%를 내는 나라 사람보다 불만이 크다. 이게 바로 한국사회의 경쟁력 향상을 본질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투신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비판하는 억대 납세자의 생각이 국가경영의 입장에서 보면 순진하게 들릴지 모른다. 5조원을 아끼다 국민경제의 기둥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응급처방을 할 동안에만 통하는 논리다. 응급조치가 끝나면 누가 이‘투신’이란 환자의 임상책임을 맡아 치료했고, 환자는 식이요법을 잘하며 회생노력을 했는지 납세자한테 밝혀야 한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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