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 다시 한번 과외열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27일 헌법재판소가 ‘과외금지는 위헌’이라고 결정함에 따라 그동안 금지돼왔던 *일반인의 과외교습 *학원강사의 개인교습 *대학이나 고교 강사 등의 예·체능 과외가 전면 허용되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과외의 보편화와 심화이다. 지금도 수능시험을 위한 과외, 예능 또는 컴퓨터 같은 특기과외가 성행하고 있지만 그나마 ‘학원 이외의 과외는 안된다’는 통념과 법 때문에 비교적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과외시장은 거대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류 학원강사를 중심으로 한 고액과외가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200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성적을 9등급화해 수능 의존도를 떨어뜨려 놓았지만 영역별 점수 반영 때문에 여전히 학과목 성적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2 대입부터 수학경시대회 등 각종 경시대회 입상기록 및 토플 성적, 컴퓨터 활용능력 등 특기·적성이 전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됨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과외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강사 등 정식 교수나 교사가 아닌 전문가들에 의한 예·체능 과외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부분은 특기·적성이 대입에서 점차 강화되는 추세와 맞물려 상당한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IMF로 임시직 등 신분이 불안한 계층이 ‘과외업’에 본격 나서는 경우도 가정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과외의 성행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된다.
이런 상황들은 결과적으로 학교교육(공교육)의 위축과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교육부는 “과외가 보편화돼 수요공급이 균형을 찾으면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사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사실 이는 기대난이다. 과외가 수요공급의 논리로 가격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부터가 대단히 순진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부는 헌재 결정이 사실상 2개월 전부터 예견됐었는 데도 공교육 보완방안 등에 대한 대책을 전혀 가다듬지 않은 상태여서 이제부터 과외와의 전쟁을 시작해야하는 실정이다.
문용린(文龍鱗) 교육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공교육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2002학년도부터 수능성적보다 특기·적성을 중시하는 새 대입제도가 실시되고 제7차 교육과정이 단계적으로 시행되면 공교육은 잘 될 것”이라는 다소 안이한 인식을 보였다.
학부모쪽의 걱정은 과외를 시킬 것인가 안 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는 더 비싼 과외를 시킨다는데 내 아이는 어떡하나”로 요약된다.
IMF를 겪으면서 우리의 빈부 격차가 역대 최고로 벌어진 상황에서 ‘있는 집 아이가 공부 잘 한다’는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마저 고착화한다면 사회통합에도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광일기자
kilee@hk.co.kr
■문용린(文龍鱗) 교육부장관은 27일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이 난지 1시간여만인 오후 3시10분께 “위헌 결정이 난 학원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와 22조를 고쳐 고액과외를 강력히 규제하는 대체입법을 당장 내일부터라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내용.
_이번 헌재 결정을 어떻게 해석하나.
“고액과외 금지를 위한 방법으로 과외행위 일반을 지나치게 폭넓게 규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뜻이므로 역설적으로 고액과외는 얼마든지 사회적·법률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본다.”
_대체입법은 어떻게 추진하나.
“(6월 정기국회 개원 전까지) 내일부터라도 팀을 구성해 각계 의견을 폭넓게 들어 고액과외의 개념과 규제방안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짜나가겠다. 시간적으론 몇달은 소요될 것으로 본다.”
_대체입법 전까지 일반인이나 학원강사가 고액과외를 할 경우 단속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졌는데….
“대체입법 전까지 공백기간 3∼4개월간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_일반인과 학원강사의 개인교습이 허용됐는데 대책은.
“이들이 값싸고 질 좋은 사설교육기관(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개인교습신고제 등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규정 마련 전까지는 기존의 학원 관련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_공교육이 위축될 우려가 큰데 이에 대한 대책은.
“공교육을 최대한 활성화해 과외를 줄인다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다. 200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성적보다는 특기와 적성을 최대한 강조하는 새 대입제도가 시행되고 올해부터 시작된 제7차교육과정이 정착되면 공교육은 5∼10년 정도면 상당히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광일기자
kilee@hk.co.kr
■[헌재결정 의미] 사회적 폐해우려불구 교육권침해 판단
헌법재판소가 27일 과외 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기본권인 자녀 교육권이 국가에 의해 지나치게 간섭받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액과외 교습 봉쇄를 통해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과외경쟁으로 인한 사교육 기회의 차별을 최소화 하기 위한 현행 학원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의 입법목적은 정당하지만 포괄적으로 과외 교습을 제한,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헌재는 사회적 폐해가 큰 고액과외나 학생부·내신성적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학교 교사의 과외 교습을 규제할 수 있는 입법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사교육에 대한 국가 규율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부모의 교육권과 학생들이 인격 발현을 위해 자유롭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선에서 사교육에 대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또 현행 규정이 전면적인 과외금지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예외규정을 둬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금까지는 직장인과 주부 등의 과외는 금지됐지만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의 과외는 허용되고 학원에서 초등학생의 교과목 수강은 금지된 반면 중·고교생 교과 과외는 허용돼 왔다.
헌재는 이외에도 과외금지 조항이 과외를 가르치는 사람의 직업선택의 자유에도 반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번 과외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망국병’으로 꼽혔던 과외가 전면 허용돼 고액 과외 등의 상당한 부작용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했으나 부득이하게 위헌 결정을 내렸다.
사회적 혼란과 파장이 예상되는 경우 대개는 법이 개정될 때 까지 효력을 인정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지만 문제 조항이 형벌 조항이기 때문이다.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날 경우 지금까지 형사 처벌 받은 사람이 구제될 수 없어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시키는 것이 실체적 정의에 맞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문제 조항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들의 재심 청구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과외해금 이후] 재판관들 격론 거듭
결정까지 뒷얘기... "위헌" "헌법불일치" "합헌"
27일 결정을 내리기까지 헌법재판관들은 고심과 격론을 거듭했다.
재판관들은 단순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초래할 ‘고액 과외의 부활’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등 사회적 파장 및 부작용을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대다수 재판관들은 단순 위헌결정 대신 일정기간 이 법률의 효력을 인정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즉 위헌적인 법률의 효력을 일정 기간 인정할 경우 해당 법률에 근거한 형벌이나 국민기본권의 제한을 용인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본 것.
그러나 정경식(鄭京植) 한대현(韓大鉉)재판관은 “이 법률조항에 대해 곧바로 위헌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폐단을 제거할 새로운 수단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며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모(李永模)재판관은 “개인교습은 그 행위의 은밀성과 극심한 폐해 때문에 학교교육의 공공성을 저해할 수 밖에 없다”며 합헌 의견을 견지했다.
한편 헌재는 이미 지난 2월 과외금지가 위헌이라고 잠정 결론내리고 3월말 선고를 검토했으나 4월 선거 직전에 사회에 미칠 파장 등을 가늠키 어렵다고 판단, 선거 이후로 선고를 미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을 내리기 전 평의(評議)과정에는 현대고 교장을 역임한 정희경(鄭喜卿) 전 의원, 참교육학부모회 오성숙(吳成淑)회장 등이 교육계의 현실 및 과외의 폐해 등을 증언, 재판관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황상진기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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