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예가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 74)의 서법전이 26일부터 5월 14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열린다. 금호미술관이 최근 그의 작품 67점을 구입하면서 갖게 된 기념전으로 최근작을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전성기라고 평가되는 1960-80년대 초에 쓴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일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 운영비 마련을 위해 소장하고 있던 작품 중 3분의 1을 처분했다. ”는 여초는 “점점 서예인구가 줄어들면서 동방연서회 회원도 점차 줄어들어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체계적인 서예연구와 보급을 위해 1956년 설립된 재단법인 동방연서회는 그동안 1만여명의 회원을 배출했다. 하지만 컴퓨터 보급이 확산되면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중인 회원 수는 100여명을 밑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모필(毛筆)에 묵(墨)을 찍어 글을 쓰는 일이야말로 인성이 본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지식만 많아서는 안된다. 인간다워지는 과정이 바로 학문”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서법(書法)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글씨에는 쓰는 이의 학문, 수양, 지식 외에도 타고난 품성과 인생 경험까지 드러나는 것이므로, 작품이 마음에 안든다고 개칠을 하거나, 마음이 들 때까지 종이를 찢고 다시 쓴다 하더라도, 글씨가 결코 더 좋아질 수 없다”고 말했다.
70~80이 된 사람은 그 연령만큼의 인생을 터득한 경험이 글씨에 투영되므로, 어느 시기 작품이 최고라는 말 역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우수사려(憂愁思慮)를 떨쳐 버리고 정신을 한 군데에 모은 공(空)의 상태에서 쓴 필봉(筆鋒)은 중심은 깊고, 호가 닿는 곳은 얕게 나타나는 등 입체감마저 보인다. ”면서 글씨란 결코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려고 쓰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신이 나, 슬플 때는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붓을 든다.” 는 여초는 지난해 봄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진 이후 백담사 부근으로 거처를 옮겨서도 여전히 하루 5시간 이상씩 붓을 잡고 있다.
/송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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