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 현이 48세로 타계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10주기를 두 달 앞두고 그의 문우 60여명은 주말인 29일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김 현 10주기 추모 문학 심포지엄’을 갖는다. 김 현은 한국일보가 제정한 팔봉비평문학상의 첫 수상자였다.90년 5월말의 시상식 날 그는 병원에서 투병 중이었다. 대학생 아들이 대리 수상하는 장면을 보면서 시인 황지우가 “1백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평론가인데…”라고 안타까워하던 모습이 선하다. 수상 한 달만에 그는 유명을 달리 했다.
■ 그때 수상을 계기로 많이 야윈 그를 만나 비평작업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그가 지상에서 한 마지막 인터뷰였을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느낄 때는 한 시대의 큰 문학적 움직임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느낄 때와, 어느 작품이 중요하다고 느끼는데 남들이 지적하지 않을 때”라고 그는 말했다.
해방후 한글로 읽고 쓰기를 한 첫 세대에 속하는 그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고도 밝혔다. 이 말은 언어와 역사 체험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가를 보여준다.
■ 약관의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하여 31세 때 첫 평론집을 발간한 이래 그는 줄곧 문학적 대가 대접을 받았고, 또한 대접에 걸맞은 문학적 업적을 남겨 놓았다.
그의 글은 아름답고 명석해서 쉼표(,)를 많이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편했다. 개인의 역량에 한계가 있는 법이기는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우리 문학의 빈곤한 궤적을 보면 그의 부재가 몹시 아쉽다.
■ 김 현은 자신의 글쓰기와 관련해서 ‘리듬에 대한 집착, 이미지에 대한 편향, 타인의 사유의 뿌리를 만지고 싶다는 욕망, 거친 문장에 대한 혐오 등은 거의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거칠어져 가는 시대에 섬세하고 명석한 문인이 기다려진다. 특히 4·19 혁명 40주년을 보내며 4·19 세대의 몫에 충실하고자 했던 평론가이자 지식인의 초상을 그리워하게 된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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