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와 밭갈이를 시작하며 1년 농사를 준비할 시기인 4월, 영동지방의 산불피해는 마치 연례행사처럼 찾아든다. 하지만 올해의 산불피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컸다. 산림복구비로 1,000억원이 예상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피해 규모를 짐작 할 수 있다.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재산피해가 아니다. “송이를 따서 자식들 대학까지 보냈는데 이제 우리 대에서는 그 재미를 다시는 누릴 수 없을 것”이라는 어느 촌부의 탄식처럼 황량해져 갈 산촌의 풍경이다.
국내산 목재만 이용하는 목재주택을 보급하겠다는 일념과 장애인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가꿔온 작업장을 하루아침 불길에 날려버린 토담목조주택 최벽규씨가 “평생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려는 나에게…” 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애꿎은 불을 원망해 본다. 그리고 원망은 산불을 초기에 진화하지 못한 행정당국으로 향한다.
1996년 고성 산불때 정부는 초기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항공기 도입과 산림관련 공무원의 충원, 산림청·자치단체·소방서·군부대 등 관계부처간 통합지휘체계 마련 등의 방안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고 ‘원인은 인재(人災)’라는 똑같은 메아리만 울리고 있다.
행정당국의 무소신과 그때만 모면하면 다짐을 잊어버리는, 그래서 또 대형참사가 발생하는 어이없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주민을 위로한다는 짧은 성명서와 관련 공무원 몇 명의 징계만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당국의 안일한 대처 또한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 긴 호흡으로 그간에 나타난 문제를 다시금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복원이다. 다음세대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대책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피해주민과 주민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각계의 전문가를 포함한 지역환경단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각계의 단체에서 벌이고 있는 피해조사와 복원계획을 함께 마련하기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산불로 집이 허물어지고, 부모님 묘소도 다 타버려서 홧김에 소주를 마시고 불콰한 얼굴로 화재조사가 진행중인 현장에 나온 주민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철저히 조사해 가시오. 그리고 우리들 보상좀 제대로 해주라고 국가에 얘기 잘 해주시오”
/정광민 강릉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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