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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발레시어터 이사장 임영희씨, 자식돌보듯 단원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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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발레시어터 이사장 임영희씨, 자식돌보듯 단원챙겨

입력
2000.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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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좋아한다 해도 대부분 관객으로 머문다. 예술단체를 직접 후원하고 제 일처럼 챙기는 이는 드물다. 민간발레단인 서울발레시어터(단장 김인희)를 돕는 주부 임영희(54)씨가 그런 사람이다.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은 그를 ‘엄마’라고 부른다. 자식을 돌보듯 단원들을 보살피기 때문이다. 연습실을 찾을 때마다 단원들 먹이려고 김밥을 싸거나 간식을 챙겨 온다.

몸이 무거워진다고 밥을 굶는 단원들이 안쓰러워 과일이나 야채를 먹기 좋게 잘라서 차려놓곤 한다. 공연 전단을 한 뭉치씩 들고가 동네 가게에 붙여 놓고, 아는 사람들을 관객으로 데려온다.

단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것을 단장에게 전달하는 다리 역할도 그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 이밖에 공연이나 운영 아이디어를 내놓고, 언론용 보도자료를 손질하는 등 그야말로 몸과 마음으로 돕고 있다.

이 가난한 발레단이 IMF사태가 터지자 토슈즈 비용도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를 때 토슈즈 모금운동을 생각해낸 것도 그이다. 단원들은 그가 보이지 않으면 ‘어디 아픈 게 아닌가,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걱정할 정도가 됐다.

언론사 기자를 거쳐 공직에서 은퇴한 남편과 아들, 딸이 있는 평범한 주부다. 그런 그가 서울발레시어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4년 전 일이다. 이 단체의 공연 ‘손수건을 준비하세요’를 보고 반해서 팬이 됐다.

“그 전까지는 발레 공연을 본 적도 없었죠. 그런데, 무용수들이 땀흘리며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까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무용수들이 고생하는 줄 알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최근 서울발레시어터의 이사장을 맡게 된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며 쑥스러워 한다. 하지만, 단장 김인희씨는 ‘부모라도 이사장님처럼 우리를 돌봐주진 못할 것”이라며 “이런 분이 계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요즘 그는 거의 매일 연습실에 나온다. 27일 저녁 서울 KBS홀에서 있을 서울발레시어터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로미오의 어머니역을 맡아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걸어 들어오고 나가는 간단한 동작이지만, 그로서는 바짝 긴장되는 일이다. (공연문의 KBS홀 02-781-2242)

서울발레시어터는 유니버설발레단을 빼곤 국내 유일한 민간 직업발레단이다. 재정난으로 단원들은 월급 몇십만원의 박봉을 받으면서도 발레가 좋아 열심히 한다. 재능있는 상임안무가 제임스전과 예술감독 로이 토비아스가 이 발레단을 통해 좋은 창작발레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창단된 지 5년, 의욕과 성실함으로 버티고 있는 이 단체를 돕는 이는 임씨 말고도 또 있다. 단원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치과의사, 이 단체의 공연 포스터로 자기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까지 도배하는 음식점 주인, 발레단에 무슨 일만 있으면 멀리 여수에서 올라오는 사업가 등…. 서울발레시어터의 가능성을 믿는,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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