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뒷짐땐 또 '위기'경제정상화의 발목을 잡는 핵심 경제현안 처리가 지연돼 자칫 97년 경제위기직전과 같은 난맥상 재연이 우려된다.
‘경제적 동면(冬眠)기’였던 총선이 끝났는데도 대우차매각 등 부실기업정리, 투신사를 비롯한 금융구조조정, 황제경영타파(재벌개혁) 등 해묵은 과제의 해결은 이해집단의 조직적 반발과 도덕적 해이, 관료들의 눈치보기속에 여전히 답보상태다.
그러나 내년이후엔 국내외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정치일정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어, 현안해결의 ‘데드라인’은 올해 뿐이라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올해안에 주요 경제현안을 정리하지 못할 경우 ‘97년의 악몽’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97년 기아차 문제가 ‘국민기업론’을 앞세운 경영진과 노조 및 정치권까지 가세한 이해당사자의 집단이기주의속에 한없이 꼬여갔듯이, 현재 대우차 매각문제도 ‘국부유출론’‘고용안정론’에 정부와 채권단이 질질 끌려가는 양상이다.
또 97년 당시 금융부실과 질서파괴의 진원지였던 종금사를 제대로 손대지 못해 결국 금융위기를 자초했던 것처럼 지금은 시장불안의 핵인 투신사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금융구조개혁과 시장안정이 더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극단적인 ‘레임덕’아래 대선전 정치논리가 기승을 부렸던 97년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소야대로 인해 정부의 정책추진력이 약화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년의 희생에 대한 ‘보상요구’적 성격이긴하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가 창궐하는 모습도 97년을 연상케한다.
물론 300억달러를 만수위로 급격히 하강했던 97년과 850억달러를 넘어 1,000억달러로 향하고 있는 현재의 외환보유액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성장하락-고물가-국제수지적자였던 당시와 이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는 지금은 거시지표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누적된 부실과 왜곡된 구조의 뇌관을 제때 제거하지 않는다면, 경제지표는 언제라도 거품처럼 꺼질 수 있다.
현안처리가 올해,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까닭은 몇가지 있다. 우선 내년이후 국내외 경기의 불투명성이다. 충격을 흡수할 만큼 경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구조개혁은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부실금융기관도 원리금이 일부만 보장되는 내년보다는 완전보장원칙이 유지되는 올해 정리해야 저항이 적은 것이다. 거품론이 일고 있는 미국경기의 조기하강과 인플레압력으로 국내경제정책의 조기긴축전환되는 것에 대비해서라도 핵심현안은 더이상 미뤄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든든한 리더십의 뒷받침없이는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미묘한 쟁점을 풀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치적으로도 내년 보다는 올해가 적기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충격 최소화를 위한 ‘연(軟)착륙’‘미(微)조정’만을 얘기하면서, 아직 짜여지지도 않은 여소야대 상황만 걱정하며, 특히 최근에는 개각설에까지 휩쓸려 부실을 털어내는 작업에 좀처럼 손을 대려하지 않고 있다.
최근 진행중인 재벌압박도 오너경여·금융소유 등 핵심 보다는 단발적 ‘얼차려’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분명한 것은 경제의 새틀을 짤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다시 실기(失機)한다면 실패한 구조개혁으로 주기적 위기을 겪고 있는 중남미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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