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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정체성과 세계성의 격렬한 시험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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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정체성과 세계성의 격렬한 시험무대

입력
2000.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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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를 보는 관점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르몽드지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메카’로서 자리잡았다고 칭찬했다.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다데하다는 ‘아시아를 존중하고 서구중심 틀을 깨뜨린 것이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비판하는 목소리는 총감독제 하에서 권역별로 전시구성을 한 것을 지적한다.

평범하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또 다중 관객이 오는데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너무 미술 전시 방향으로 가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어쨌건 광주비엔날레는 제대로의 색깔을 내고 방향을 잡기 위해 모험을 했고, 전략적 측면에서 먹히고 있다고 본다.

1, 2회 동안에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한 아시아 현대미술을 이번에는 뒤집어서 맨 앞에 내세운 점도 그렇고, 현대미술의 강국인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태리 작가를 유럽권 커미셔너가 제외시킨 점도 파격적이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한 덩어리로 보아 북유럽과 남아프리카, 가운데의 중동권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고정화된 유럽에 대한 권위적, 의례적 시각을 깨뜨린 것이다. 오히려 신선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아시아에 대한 비중이 높아진 반면 구미권에 비해 덜 세련되어 보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는 오랜 역사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반면 현대적 창의성은 이제부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세련도나 컨셉 면에서 미숙한 것이 당연하다 할 수도 있다. 반면 아시아는 특유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서 장점을 드러내고 있다.

비엔날레의 국제성을 중시한 나머지 국제적 담론과 형식에 맞추어 지역성을 탈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쉽게 말해서 소수의 기획자들이 국제 미술이라는 무대 위에서 전략적 대응을 하고 이를 위해서 지역적 문화적 정체성 문제는 보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비엔날레의 본질적 존재 이유를 망각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광주비엔날레는 자체의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발전되어야 하고 결과적으로 세계성을 얻어내야 한다. 지역성과 세계성은 맞물려서 힘을 발휘할 때에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비엔날레를 소수 전문가의 기획에 의한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간주한다면 이는 비엔날레를 지켜보는 대다수 관람객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비엔날레를 담보로 꾀하는 유목민적 전시 기획을 주장하는 것은 서구 몇몇 기획자들이 약탈적으로 행하는 문화적 제국주의와 별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없으며,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문화적 토양 위에서 세계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비엔날레를 둘러싼 국내의 파벌 의식도 심각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미술이 세계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는 다양한 쟁점이 야기되고 토론되어야 마땅하나, 패권주의를 연상시키는 다툼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총감독을 했던 하랄드 제만이 광주비엔날레의 장래를 언급하면서 너무 많은 관객이 몰려오는 것은 박람회같은 분위를 만들어 좋지 않고, 관객이 줄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미술행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광주비엔날레가 갖가지 문화 욕구를 폭발시키는 장으로서 인식되기 보다는 한국과 아시아 미술을 세계 무대에 펼치는 무대로서 보다 정돈되고 설득력있는 구성을 짜임새있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장석원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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