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길부터 마뜩찮다. 홈구장겸 연습장은 일반인이 찾기 힘든, 적막한 산기슭의 한자락에 놓여 있었다. 요양소로 더 적합해 보인다.경기 고양시 가구공단 진입로를 가로질러 꼬불꼬불 가다보니 프로야구 현대의 2군선수들이 공휴일 낮의 땡볕 아래서 비지땀을 쏟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의 함성은 같은 시각 자동차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열띤 정규리그 중계방송과 겹치면서 묘한 명암을 자아냈다.
프로야구 2군선수들. 이들은 선수이면서도 선수가 아니다. 관중의 환호성, 그 흔한 고액연봉 등은 강건너 일일 뿐이다.
‘2군=2류’라는 주변의 인식과 자격지심은 이들의 소외감을 더욱 부채질 한다. 프로세계의 냉혹한 적자생존의 룰을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다.
그래도 체념은 않는다. 비록 연습생신화를 만든 장종훈의 경우가 하늘의 별따기이긴 하지만 ‘내일은 1군’이라는 꿈이 가슴 깊숙이 있기에 ‘오늘의 시련’을 온몸으로 부딪친다. 현대 2군소속 1루수인 프로 9년차 황윤성(26)을 통해 이들의 생활상을 들어봤다.
_2군에 있더라도 1군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올텐데요. 통상 한 시즌에 몇 차례정도 1군경기에 나갑니까.
“같은 포지션의 선수가 부상이나 심한 슬럼프에 빠질 때 기회가 생기기때문에 들쭉날쭉입니다.”(신언호 2군감독은 “각 구단의 2군선수 수는 평균 35∼40명선인데 1군의 전력이 강한 팀은 2군선수들에게 돌아오는 출장기회가 적고, 약한 팀이면 자주 있다”면서 “하지만 용병이 들어오면서 1년에 평균 2∼3회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거들었다)
_황선수는 1군경기에 언제 처음 나가봤습니까. 그때 기분도 남달랐을텐데요.
“시즌마다 몇 경기씩 1군에서 뛰었습니다. 처음 1군경기에 나섰던 때는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프로에 입문하던 해인 92년 시즌말입니다. 삼성전부터 시즌이 끝날 때까지 10게임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나이도 어렸던데다 출장을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터라 첫 경기 전날밤에 가슴이 무척 설레고 들떴던 기억이 납니다.”
_기회를 잡더라도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짧은 시간내에 100% 발휘해야 하는 행운까지 있어야 감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텐데요.
“가끔씩 출장하다보면 그게 어렵습니다. 작년 6월께 11게임을 연속으로 출장한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방망이가 잘 맞다가 점점 떨어지는 바람에 2군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때 서러운 기분이 들더군요.”
_연봉은 얼마입니까. 현재의 연봉으로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습니까.
“1,800만원입니다. 한달에 150만원꼴 됩니다. 일반 사무직이라면 몰라도 우리는 방망이나 글러브 등 장비구입비에다 체력유지를 위한 보약비가 고정지출되는데다 세금까지 제하고 나면 빠듯합니다. 제 경우에는 연간 장비비가 200만원, 보약비가 100만원정도 고정적으로 들어갑니다. 그래도 저는 미혼이기때문에 견딜만 하지만 결혼한 선수들은 아무래도 생계가 힘들지 않겠습니까.”
_2군으로 오래지내다 보면 운동에 회의를 느껴 중간에 그만두는 선수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도중에 은퇴한 선수들은 주로 어떤 직업으로 진출합니까.
“보통 3∼4년차에서 많이 그만둡니다. 그동안 해온 게 운동밖에 없는데 달리 할 게 있겠습니까. 주로 자영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신언호감독은 “넓은 안면을 활용해 주로 세일즈쪽에 종사하고 있고 최근에는 직장야구의 활성화 덕택에 그 쪽으로도 다수 나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_1군과 2군과의 대우차이가 어느 정도입니까.
“1군에 비해 모든 면에서 다 크게 떨어집니다. 기본적으로 먹는 것, 자는 곳에서부터…. 사람인 이상 상대적 박탈감이 들지않을 수는 없지만 능력이 최우선하는 프로 계인 만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극제로 삼아야죠.”
_황선수는 올해로 9년차인데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중도하차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운동에 매달리다 보면 딴 생각하고 있을 시간도 없습니다. 또 막상 나가면 달리 할 것도 없고요.”
_남몰래 느끼는 회의나 서러움도 많았을텐데요.
“처음 프로무대에 뛰어들 때만해도 잘 할 자신이 있었고 꿈도 컸는데 제자리에서 계속 맴돌다보니 회의감이 생기더군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요. 1군에서 2군으로 다시 복귀할 때는 자책감에 상당히 괴로웠던 적이 있습니다.”
_2군의 연간 스케줄은 어떻게 짜여져 있습니까.
“20일부터 2군리그가 시작됐는데 시즌이 끝나는 9월초까지는 숙소에서 지냅니다. 시즌이 끝나면 일주일 정도 쉰 뒤 다시 모여 동계훈련을 하는데 겨울에 20일 동계휴가가 주어집니다. 시즌에는 일주일에 4번의 경기가 있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오전 오후 야간훈련이 있습니다.”
_희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또 선수생활은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
“다른 희망은 없습니다. 오직 1군에 올라가는 것 밖에는요. 물론 1군에 가면 잘 할 자신은 있습니다. 그리고 선수생활을 하고 안하고는 제 의지와는 상관없습니다. 계속하고 싶어도 짤리면 못하는 것 아닙니까."
남재국
jknam@hk.co.kr
■황윤성은 누구인가?
인천 서림초등 3학년때 야구가 좋아 글러브를 잡았다.
대원중-제물포고를 졸업한 뒤 1992년 태평양에서 프로야구를 시작했다.
올해로 9년차. 주로 2군에서 1루수로 활동하고 있다.
신언호 2군감독은 “(황윤성이) 2군리그에서 3할대의 타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좋은 선수이나 1군의 1루포지션을 팀의 간판방망이들과 용병들이 주로 꿰차고 있다 보니 발탁될 수 있는 기회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美·日 프로야구 2군의 경우
LA 박찬호는 1994년 5월 메이저리그 데뷔 17일만에 마이너리그 더블 A팀인 샌안토니오 미션스로 내려갔을 때 잠시나마 메이저리그 물을 먹은 자신에게 소속선수들이 보내는 선망의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고급 스테이크요리를 즐길 때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눈물젖은 햄버거를 먹으면서 빅리그를 향한 꿈을 키운다.
이름은 다르지만 프로 2군이나 마이너리그는 와신상담의 산실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연봉 하한선은 400만엔. 우리 돈으로 약 4,000만원 수준이다.
국내는 600만원을 최저연봉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1,200만원이 최하수준. 최하한선이 월 850달러인 마이너리그는 더블 A 하급에서 싱글 A 상급수준의 평균 연봉은 한국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건은 다를지언정 이들은 모두 1군이나 메이저리그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참고 견뎌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선수 대부분이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치지만 이웃 일본이나 국내 프로야구는 가뭄에 콩나듯 2군에서 1군으로 배출된다. 선수층이 얼마나 두텁느냐는 여부에서 오는 차이다.
박찬호와 같이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장 메이저리거가 된 경우는 역사상 20여명 안팎이다. 선수층이 두터운 만큼 급할 것이 없기때문.
반면 일본이나 국내 프로야구는 될 성 부른 나무가 2군에서 썩는 법이 없다. 대부분 1군에 먼저 오르고 재활 등을 위해 잠시 2군에 내려갈 뿐이다.
미국은 트리플 A부터 최하등급인 루키까지 제각기 리그를 갖고 있고 일본은 동·서부, 국내는 남·북부리그로 2군경기를 갖는다.
하지만 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있는 미국에서는 마이너리그라도 관중이 몰려들고 구단은 ㅣ익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될 정도로 시장성도 있다. 일본 역시 지역방송 중계와 스폰서가 붙는 등 나름대로 활로를 갖고 있다.
반면 마케팅개념이 없는 국내 2군경기는 연습구장에서 벌이는 '그들만의리그'로 가뜩이나 심한 소외감을 부추기고 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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